벤처, 패자부활 기회 좀 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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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개인 자산 관리 및 금융 솔루션 개발 정보기술(IT) 업체인 ㈜머니콘트롤의 이광배(36) 대표. 지금은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 자산 관리 분야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회사를 키웠지만, 2010년 처음 창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막막하기만 했다.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쌓은 경험·아이디어는 넘쳐났지만 투자 유치, 위기 극복 노하우 등 실무적인 조언을 받을 곳을 찾지 못했다. 그는 “정부의 창업자금 지원도 성공 가능성보다는 면접에서 얼마나 말을 잘하고, 사업계획서를 잘 쓰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며 “정작 창업자금이 절실한 이들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새 성장 동력으로 창조경제를 천명하면서 벤처기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시작된 벤처 붐이 확산되지 못하고 되레 시들고 있는 것은 왜일까.

 우선 창업 금융이 활성화되지 못한 점이 첫손에 꼽힌다. 28일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총액 472조원 가운데 벤처 투자로 조달한 금액은 5조원(1%)에 불과했다.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벤처캐피털 규모도 한국은 0.03%에 불과, 이스라엘(0.175%)이나 미국(0.088%)에 비해 크게 낮다. 인수합병(M&A)도 여의치 않다. 한국은 투자자금 회수의 대부분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이뤄지고 M&A는 7%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M&A 71%, IPO가 29%다.

 박진택 벤처캐피탈협회 실장은 “아직까지 초기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은 정책자금 융자가 대부분인데, 이를 민간에 의한 투자로 전환키 위해선 M&A 시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업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불안하다 보니 패자 부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경우 창업했다 파산해도 창업자의 거주 주택에 대해 12만5000달러까지는 압류가 면제되고, 보험은 최대 9850달러까지 보호된다. 반면 한국은 임차보증금 1600만원과 생계비 720만원(6개월분)까지만 보호가 된다. 박창교 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은 “최소한 의지가 있는 창업자에게는 체계적인 재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주요 기관·대학마다 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예비 창업자들은 충분한 지식을 얻지 못한다고 푸념한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일이 들어오면 부랴부랴 사람을 뽑는 중소기업의 관행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인재를 못 찾는다고 하지 말고, 인재 개발 시스템을 갖춰 내부 인력을 육성하는 식으로 인력 충원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선언·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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