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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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 몇 가지 용어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주한미군 감축문제를 둘러싼 용어상의 불투명이 그것이다. 미군감축에 대한 표현은「철수」(withdrawal)와 「감축」(reduction)이 동시에 쓰여지고 있다. 특히 외신 「텔리타이프」의 「카피」에서 자주 보는 일이다. 미군신문 「성조」지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with-drawal」의「with-」는 「뒤로」라는 뜻을 갖는다. 따라서 「철수」라는 말은 부분적(partial)이든 아니든, 떠난 자리의 「공백」을 연상하게 만든다. 외신은 때때로 「실질적인」 (substantial)이라는 표현도 하고있다. 이것은 한반도에 미군이 한 명도 남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의도는 그것이 아닐 것이다. 철수라기 보다는 「감축」(reduction) 쪽이다. 미국은 다만 규모를 줄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한미군 감축」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그밖에도 「통고」(inform)라는 용어의 혼란도 있다. 지난 8일 주한 미국대사 「포터」씨가 우리나라 외무부를 방문한 후, 이 말이 나왔다. 「통고」라는 말만으로는 이미 미국정부에 의해 「결정된 사항」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알려준 것 같은 인상이다. 따라서 「행동」이 뒤따른다는 뜻과도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과는 다르다.
한미방위조약 제2조를 보면, consult라는 용어가 쓰여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협의」 라고 표현했다. 유사시 당사국은 「컨실트」한다는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군 감축문제는 마땅히 「협의」해야 할 사항이다. 그렇다면 「포터」대사는 이제 그 「협의」를 시작하자고 요청한 것이다. 「감축」을 「통고」할 단계는 아직 멀었다.
「협의」는 지금부터이다. 만일 당사국간의 이 「컨설테이션」이 「해피·엔딩」을 보여 준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박사는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도전과 응전은 역사발전의 힘이 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인류 역사는 바로 이 「찰린지」와 「리스폰스」의 탄력으로 보는 것이다. 「토인비」박사는 『역경의 효능』이라는 재미있는 표현도 하고있다.
이번 미군 감축문제에서도 우린 『역경의 효능』을 십이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미국 정부로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한국의 「전복위화」는 실로 자유세계의 비극이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양식은 이런 것이 아닐 것이다.
미국은 진지하고 성의 있는 태도로 이번 「협의」의 「해피·엔딩」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도전에 응전할 「역경의 효능」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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