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탈북 후 중국 억류 김광호씨 가족, 국적 따라 한국행·북송 엇갈린 운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달 14일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돼 억류됐던 재탈북자 김광호씨 가족 5명이 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했다고 복수의 외교소식통들이 19일 전했다. 탈북민지원단체인 에바다 선교회 송부근 목사와 외교소식통 등에 따르면 한국 국적을 가진 김씨 부부와 한 살배기 딸은 16일 중국 선양(瀋陽)에서 항공편으로 무사히 한국에 입국한 반면, 북한 국적의 김씨 처남(27)과 처제(19)는 이달 초 투먼(圖們) 수용소로 분리 수감됐다.

 김씨는 2009년 8월 탈북해 목포에 정착했다가 올 1월 한국에서 살 수 없어 북한으로 돌아왔다면서 북한에서 대남 비방 기자회견까지 했으나 중국으로 다시 탈출했다.

 김씨 부부는 한국에 정착했을 때 우리 국적을 갖게 됐다. 북한인권개선모임 김희태 사무총장은 “북한이 라오스 탈북청소년 9명의 강제북송 때처럼 보위부를 보내 중국 정부를 설득한 것으로 안다”며 “투먼으로 수감됐으면 이미 황해도를 거쳐 북송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탈북자 2명의 북송 위기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는 김씨 부부의 한국행이 ‘박근혜정부의 대중외교 성과’라는 자평이 나왔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중국 정부의 탈북자 문제에 대한 대응과 인식전환에 큰 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며 환영 논평을 냈다.

 하지만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 정부가 북한 국적자인 김씨 처남, 처제를 묶어 둔 건 큰 틀에서 기존 탈북자 방침을 고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국제 인권 이슈가 될 것을 우려한 중국이 ‘국적’을 기준으로 김씨 부부와 딸은 한국으로, 북한 국적인 처남과 처제는 북한으로 보낸 것”이라며 “김씨 부부의 한국행은 대국으로서 국제사회 명분과, 북·중 관계라는 실리를 고려한 중국의 원포인트 조치”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1960년 맺은 ‘북한-중국 탈주자 및 범죄인 상호인도협정’을 통해 탈북자를 난민으로 보기보다 불법체류자로 간주해 강제송환 정책을 고수해 왔다. 2002년 당시 김하중 주중대사와 왕이 외교부 부부장이 맺은 소위 ‘왕김 합의’에 따라 한국·외국공관으로 들어온 탈북자에 한해서 제3국으로 추방 조치하는 형식으로 한국행을 묵인하기도 했지만, 북한의 탈북자 감시 강화로 공관 진입 자체가 어려워져 실효성이 떨어진 상태다.

정원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