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輻輳[폭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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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이어진 무더위 때문인지 설국을 배경으로 폭주(暴走)하는 열차를 다룬 영화가 인기다. 해마다 광복절이면 경찰은 폭주족(暴走族) 단속에 애를 먹는다. 여기서의 폭주는 질주(疾走)의 뜻이다.

전화 통화나 관심, 접속이 한데 몰리는 모습은 폭주(輻輳)라고 한다. 폭주병진(輻輳幷臻)의 약자로 ‘쇄도(殺到)하다’라는 뜻이다. 수레바퀴의 바퀴살이 축의 중심을 향해 모이는 모습을 말한다. 폭(輻)은 바퀴살이다. 주(輳)는 바퀴살이 축으로 모여드는 모습이다. 폭주의 반대는 복사(輻射)다. 바퀴살이 바퀴 둘레를 향해 사방으로 뻗어나간다는 의미다.

폭주가 쓰인 옛 전고(典故)도 적지 않다.

“여러 신하들이 잘 다스려지고 통합되어 바퀴살처럼 하나로 모여들어 군주를 섬기고(群臣修通 輻湊以事其主), 백성들은 서로 화목하여 정령을 듣고 법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百姓輯睦聽令 道法以從其事).”(『관자(管子)』 ‘임법(任法)’)

임금의 통치술을 다룬 『회남자(淮南子)』의 ‘주술(主術)’편에도 폭주가 보인다.

“군주는 천하 세상 사람의 눈으로 보고, 세상 사람의 귀로 들으며, 세상 사람의 지혜로 생각하고, 세상 사람의 힘으로 싸운다(人主者 以天下之目視 以天下之耳聽 以天下之智慮 以天下之力爭). 이렇게 하면 명령이 아래에까지 미치고, 신하들의 정황도 위에서 잘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관리들은 하나로 통합되고, 뭇 신하들이 마치 바퀴살처럼 폭주한다(百官脩通 群臣輻輳).”

지도자가 백성의 눈으로 보고 듣고 생각할 때 인재가 몰려든다는 일종의 ‘민심론’이다. 회남자의 통치 노하우는 계속 이어진다. “(이때 통치자는) 기쁘다고 함부로 상을 내리거나, 화가 난다고 함부로 벌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 통치자에겐 위엄이 서고, 막힘이 없으며, 총명함이 빛나고 갇히지 않는다.”

법치(法治)를 설파한 『한비자(韓非子)』는 “시시비비가 폭주하더라도 군주는 이에 맞서 겨루지 않는다(是非輻輳 上不與構). 조용히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음이 도의 참모습(虛靜無爲 道之情也)”이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야당은 거리로 나선 지 오래고, 증세·복지 논쟁은 식을 줄 모른다. 회남자의 ‘민심론’이 한비자의 주장보다 더 솔깃하게 들리는 요즘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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