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TV검사」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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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얼마전 KBS-TV에서「윤리와 도덕」을 내걸고 TV의 저속성을 나무라는 좌담이 있었다.
다 그럴싸한 지극히 지당하고도 타당한 말들이었으나 어쩐지 보면서 석연치 않은 감을 느꼈다. 모두들 정색을 하고 엄숙하게 나무라는 한 모습이 꼭 나에게 대해 꾸중하는 듯 해서무안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검사」가「피고인」을 앞에 놓고 다그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TV의 저속성이 그토록 아니꼽고 불쾌하다면「스위치」를 꺼버리던 그만인 것이다. 「ON」과「OFF」의 자유는 시청자에게 있다. 어쨌든 윤리와 도덕을 쳐들기전에 나무라시는「검사」님들의 찡그린 얼굴이 오히려 더 불쾌했다는 사실을 그분들이 모르고 있으니, 가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추상적인 도덕론은 아무 효과가 없고 생기도 없다. 구체적인 도덕만이 효과와 생기를 띠고 있다. 생기가 있는 도덕은 윤리라는 유일한 광선이 이 사회의 풍습이라는「프리즘」속에서 굴절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일상생활과 연결되고 대중이 참여하는 TV는 그만큼 대중예술로 보아주어야 한다. 따라서 TV의 저속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보아야만 한다. 그것이 TV의 생리다. 이것은 어느 선진국에서나 다 마찬가지다. 아직 일천한 우리 TV계를 격려해주는 말은 고맙지만, 나의 기업성까지 걱정(?)해주며 노발대발할 것까지야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대중에 영합하는 PD의 저속성」이란 말투는 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닌 폭언이다. 좀더 부드럽게 명랑을 던져주며 얘기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아쉽기만 했다.
명랑이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근자에 TV에서 느낀 쾌사가 두가지 있었다.
그 하나는 각「밴드·마스터」들이 모여 조직한「서울·하머니」(대표 길옥윤)의 출현이다. 일류 연주가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연주하는 그 진지한 모습도 감동적이었지만, 그 오묘한 연주의 우수성은 보는 사람에게 큰 감명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TV만이 아니라 경음악계의 쾌사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는 TBC-TV에서「쇼쇼쇼」시간에 근래에 보기 드문 것이 있었다.「엑스포」에 나가는 무용단의 춤과 최영희양의 고별출연 장면이었다. 자작작사에 작곡까지 한『안녕』은 일품이었고, 그 만큼 감동을 주는 곡이었다. 최양의 또 하나의 재질을 엿보여 주어 참으로 반가왔다. <이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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