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강의|조좌호<성대 도서관장·동양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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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항도 부산에 매화가 피었다는 화신이 오고, 개나리 가지가 움트기 시작하고, 멀리 갔던 철새가 돌아오는 계절이 되면 서울의 각 대학은 새 얼굴들을 맞이하는데 바쁘다. 가까스로 시험지옥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해방감과 예비고시와 입학시험이라는 이중의 난관을 돌파하고 합격의 영예를 획득하였다는 성취감과 나도 이제는 성인의 대열에 끼여 사회와 대학이 허용하는 자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게되었다는 희열감에 부푼 얼굴들. 이러한 희망과 포부에 가득 찬 얼굴들을 볼 때마다 나의 젊은 날이 회상되어 저절로 미소가 나오는 동시에, 대학생활이 머지 않아 그들에게 환멸을 주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우리나라의 대학이 젊은 학도들에게 실망을 주는 요소는 한 두 가지가 아닌데, 그 중의 하나가 대학의 강의 일 것이다.
해방 이후 많은 것이 변하였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은 대학 특히 대학의 강의 이어서 거개가 이른바 주입식 강의를 한결 같이 답습하고 있다. 일제 때만 하더라도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윤리학 개론은『거짓말하는 것은 나쁘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병든 어린 자식에게 약을 먹이기 위하여 쓴 것을 달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나쁜 짓이냐』에 대한 강의였고 철학개론은『일본정신 이란 무엇이냐?』에 대한 강의였는데 1년 동안의 강의 결론은 일본 정신이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대학의 강의는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는 능력을 길러주며,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케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창조적 능력을 함양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지, 결코 기성 지식을 전수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대학 강의의 거개는 직접적인 해답을 제시하는데 목적을 두고 학설의 소개나 기성지식의 전수에만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며, 학생들도 대학을 중·고교의 연장처럼 생각하고 교실에서의 강의가 대학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여 이에만 매달려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강의에만 의존하는 학생은 열등생이며, 강의는 열심히 듣지 않더라도 스스로 학습하고 모색하는 학생이 우등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영국의 석학「버트린드·러셀」경도 명문「케임브리지」에서 배웠으나 강의에서 얻은 것은 거의 없고 학생들의「클럽」에서 밤을 새워가며 토론한데서 얻은 것이 많았다고 술회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대학생들이 지식의 보급을 교수의 강의에만 의존하고 스스로 공부 할 줄 모르는 습성이 생긴 원인의 하나는 대학시설 특히 참고도서의 미비에 있다고 생각된다. 대학의 연구실이나 도서관의 내용을 보면 교수들이 연구하는데 필요한 책은 상당히 있지만, 어학력이 약하여 양서나 한적을 마음대로 읽을 능력이 없는 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은 특히 적다. 우리나라 도서관의 관점의 하나로서, 이에 대한 배려가 시급을 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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