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독 정상회담 개최 합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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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브란트」서독수상과「슈트프」동독 수상은 오는 19일「에르푸르트」에서 회담하기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2차 대전을 계기로 동·서독이 분단된 후 25년만에 열리는 이 양독 정상회담은「유럽」의 정세안정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처음으로 분단된 국가의 정부수뇌들이 모여서 적대적 대립을 지양하고 평화공존의 길을 모색하려는 점은 실로 역사적인 회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양독 정상회담 개최의 경위를 보건대, 동·서독은 67년 4월 서독 측이 문화·통상교류를 제의한 것을 계기로 수차에 걸쳐 양독 수상회담 개최에 관해 공한 왕래를 거듭해오다가 쌍방간에 의견이 접근하여 금년 3월 2일 수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제1차 예비회담이 열었는데 여기서 절차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져 마침내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열기로 결정을 보게된 것이다.
사민·자민 양당의 연립정권을 영도하는「브란트」서독수상은 취임직후부터 평화공존의 대 원칙 밑에 대 소, 대 동구, 대 동독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키 위해 활발한 외교 공세를 취해왔다.
이와 같은「브란트」외교정책의 전개는 미·소간 평화공존 「무드」의 심화, 국제 권력정치의 다원화,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가 자아 낸 동·서구관계의 상대적 안정을 국제정세상의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국제정세의 배경이 서독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되었다하더라도 서독이 그 넘쳐흐르는 국력을 가지고,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지속하던 동·서독간과 동·서구간의 장벽을 능동적으로 타파하여 동·서독, 그리고 동·서구간에 상대적인 안정을 확고부동하게 이루어 놓겠다는 의욕을 갖고 이를 행동으로 표시하지 않는다고 하면, 서독과 공산권 사이에 해빙「무드」는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 우리는 서독의 국력의 신장과 확고부동한 자신을 높이 평가한다.
서독의 대 동독공책은 ⓛ동독정권을 사실상으로 승인하고 ②동·서독이 상대주의 원칙 하에 무력을 감축하다가 궁극적으로 무력을 포기하고 (3)독·파 국경선을「요데르·나이세」선으로 인정함으로써 독·파·소의 삼각관계를 조정한다는 것 등 3개 항목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책 구상의 실천은 2차 대전의 소산인 동·서독 분단, 독·파 및 소·파 국경선의 변경을 반항구적으로 시인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보아 서독에「마이너스」를 주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이 제2차 대전 종결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오던 사태에 대해서 정치적인 승인은 주고 대담하게 『전쟁 상태의 종결』 문제를 매듭짓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서독을 소련 및「바르샤바」동맹국의 침략위협에서 해방하고 서독으로 하여금 동구 전역에 걸쳐 경제적으로 크게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주리라는 판단이 성립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서독의 접근은 동독이「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서독이「나토」에서 각각 이탈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서독의 체제를 공히 무력케 하거나 무용케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동·서독의 화해공존 「무드」의 성립은 동·서 군사체제의 존재 가치를 점차적으로 희박케하고「유럽」의 전체적인 안보체제 형성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인하는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60년대 초 세계는 동·서독간의 대립이 완화 내지 해소되지 않는다면, 동·서구간과, 미·소간의 대립도 완화 내지 해소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역사의 진전은 먼저 미·소간에 평화공존이 성립되고 다음에 동·서구간의 대립이 완화되었으며 나중에는 이들 두개 정세상 경향의 결과로써 동·서독의 평화공존을 모색하게 되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같은 분단국가라 하지만 동·서독 관계와 사정이 판이하게 다른 남·북한이 극도의 적대적 대립을 넘어서 평화공존을 모색하케 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이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리석은 착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의 대 중공협상이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서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우리는 경계의 눈초리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바라보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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