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야당과 민주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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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민주정치체제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야당의 존재이유와 그 육성과제의 근거는 충분하다. 왜냐하면 경쟁적 정당정치체제는 민주정치원리의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정치체제를 운용하는 요체적인 원리는 국민이 대표자들을 정기적으로 선택하는 제도적 구현(선거)을 통해서 정책작성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데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적평등을 바탕으로하는 투표권의 행사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적통제(Popular control)의 [효율성]이다. 흔히 정치적효율성이란 말을 정책의 성과와 업적에 따르는 그것으로 생각하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되고 있지만 민주정치의 그것은 다름아닌 정치적 자유일 뿐이다.
국민적통제가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투표자들이 선거에서 강제나 위협에 의하지않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수 있어야 하거니와 이것은 또한 「표의 공개경쟁입찰」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곳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택의 자유와 경쟁의 자유가 「정당을 결성할 수 있는 자유」와 「반대할 수 있는 자유」로 연결되는데서 집권정당과 경쟁하는 야당의 존재를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야당의 경쟁자적 존립성을 국민적통제의 효율성에서 찾을 수 있지만, 우리의 현실이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것은 아니다. 정책작성자들에 대한 국민적 통제를 정도의 문제로 이해할 수 밖에 없고, 의회만이라도 독무대로 삼을 수 있어야 할 정당정치의 독자적인 영역조차도 전적으로 허용되기는 힘들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는 행정권의 절대화현상이 비경쟁적 정당정치체제를 강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민주정치의 존재마저도 의심하게 되기 쉽다.
따라서 야당이 사회적기반을 상실하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활로를 가리지 못하는 난맥상과 취약성을 노출했다고 해서 그 책임을 야당에만 직접 돌려버린다는 것은 지나치게 지엽적이며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앞에서의 가정대로, 어떠한 경우에도 민주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면, 우리는 먼저 비경쟁적 정당정치체제를 경화시킨 정치상황에 대한 선의의 책임의식을 집권자들에게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행정권을 우선시킨다고해서 의회정치의 독자적인 정치영역마저 침범하는데까지 이른다든지, 야당과 경쟁한다고해서 야당을 육성해야할 사회적 과제는 외면한채 야당의 정치자원만을 철저하게 봉쇄해버리고 만다면, 결과적으로 여당의 독존화는 불가피한 현상이 되고 말것이다.
그러나 이때문에 야당이 져야할 책임이 덜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야가 대결하는 정치라는 경기에서 여당위주의 행정권간여로 그 규칙이 무시되었을 때 야당은 반사적으로 관중의 열렬한 응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당은 경기때마다 「게임」운영방법을 다각도로 발전시켜왔음에 반하여, 야당은 관중의 응원을 묘기에 대한 갈채로 착각하고 구태의연한 방법을 탈피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갈수록 「팀웍」마저 흐트러뜨리고 말았다면, 관중의 흥미를 잃게 되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치경기에서의 관중은 바로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되는 국민 대중이거니와 사회의 산업화에 발맞추어 소비자 대중의 성격을 점차 짙게 드러내고 있다. 기업가들과의 제휴를 통해서 산업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여당으로서는 이들의 지나친 영리추구로 말미암은 소비자 대중의 피해를 보호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야당은 바로 이점에 눈을 돌려야 한다. 야당이 국민 대중의 편에 설수 있는 길은 울리는 꽹과리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실효있는 소비자 대중의 보호책을 강구하는데 있을것이다.
우리 사회는 야당을 육성해야할 책임을 안고 있으며 또한 야당은 스스로의 건전한 변모를 통해서 사회적 기반을 구축할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부연할 것은 우리가 말하는 야당의 의미를 신민당에만 고정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신민당 스스로가 지금까지의 모습을 일신하고 건전 야당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성공한다면 별문제이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야당의 출현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함의영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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