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진화론으로 본 외로움 … 인간 성장의 필요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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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지음
이원기 옮김, 민음사
400쪽, 2만2000원

책의 원제는 『외로움(Loneliness)』이다. 외로움을 결과뿐만 아니라 원인(외로움을 느끼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으로도 다뤘다. 책 제목을 ‘외로움의 모든 것’ ‘외로움이란 무엇인가’로 삼아도 좋았을 것이다.

 종속변수건 독립변수건, 채택되려면 그 변수가 중요해야 한다. 이 책에 드러나는 외로움의 현주소는 심각하다. 한가하고 소소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인 중 5명 중 1명은 외롭다. 가끔 외로움을 타는 게 아니라 ‘불행하다’고 느낄 정도로 외롭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절친’(confidant)이 한 명도 없는 사람이 늘고 있다. 1985년 미국에서는 건강·일자리·시국 같은 ‘중요한 문제’를 놓고 안심하고 토로할 사람이 몇 명인가 하는 질문을 해보니 제일 흔한 답은 3명이었다. 2004년엔 0명이 최빈(最頻)값이었다.

 누구나 피로할 때가 있다. 만성피로가 문제다.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고립됐다고 항상 느끼는 ‘만성(chronic) 외로움’이 문제다. ‘만성 외로움’에 빠지면 사람 대신 애완동물에 집착하고, 온라인 인간관계로 오프라인 만남을 대체하게 된다. 만성이 아닌 일시적 외로움은 좋은 외로움이다. 모임에 가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자원봉사자로 기꺼이 나서는 사람들은 잠시라도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외로움에 적극 대처하는 사람들이다.

[일러스트 강일구]

 외로움을 독립변수로 놓고 볼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신체·정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외로운 사람과 외롭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차이만큼은 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외로움은 고혈압·비만·치매의 가능성을 높인다. 스트레스와 밀접한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면역체제 이상, 수면 장애, 우울증 악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흡연·음주, 섹스에 탐닉하는 경향에도 외로움이 한몫 한다.

 정신적으로는 판단력·의지력·자제력을 떨어뜨린다. 인생 성공에 가장 중요한 ‘력(力)’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타인이 내게 보내는 신뢰·애정·호의를 느끼는 능력이 떨어져 ‘왕따’를 당하기 쉽고 사기꾼들에게 쉽게 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외로움의 원인은 뭘까. 현대인들이 더 빈번히 거주지를 옮기고, 더 오래 살 게 된 것도 한 원인이다. ‘역사적’ 원인으로는 대략 300여 년 전부터 철학과 종교가 개인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한 것을 들 수 있다.

 저자들이 지적하는 본질적인 원인은 외로움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뇌에 외로움 기능이 장착돼 있다. 인간에게는 외로움 회피 유전자가 있다. 외로움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선조들은 애를 키우고, 식량을 확보하는 데 협력이 필요했다. 외로움은 나와 무리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알리는 경고음이었다. 외로움은 ‘변화가 필요하다’ ‘나와 우리 사이의 유대를 정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자극이었다.

 이 책의 주저자는 존 카치오포 시카고대 석좌교수다. 그는 사회신경과학(social neuroscience) 분야의 창시자로 이 분야를 30년 넘게 연구했다. 뉴욕타임스·가디언에 외로움에 대한 기사가 실릴 때마다 단골로 인용되는 학자다. 공저자인 윌리엄 패트릭은 전 하바드대출판부 과학 담당 편집자였으며 생명과학저널(JLS) 창간 편집인이다.

 저자들은 외로움을 ‘사회적 고립에 대한 지각(perceived social isolation)으로 정의한다. 외로움의 반대말은? ‘사회적 유대감(social connectedness)’이다. 외로움에 대한 사회과학·생리학·세균학·유전학·정신의학 분야의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우리말 번역본의 부제 ‘사회신경과학으로 본 인간 본성과 사회의 탄생’과 원래 부제 ‘인간 본성과 사회적 유대의 필요성’은 잠재적 독자에게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사실은 어려운 용어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 대중적인 책이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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