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수면제 두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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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1주「스케치」여행중「파리」에 머무르고있는 동양화가 천경자여사의「파리서신」을 연재합니다. 앞서 남태평양의 낙원「타이티」의 풍물을 본지에 소개한 천여사는 이번에도 대화감있는 그림과 운치있는 글로「파리」의 여러가지 빛깔들을 실감있게 그려줄 것입니다.
『윙윙』…가느다랗게 울려오는 소리때문에『모기약을 뿌려야지』하고 여름인줄 알았다가 깜짝놀랐다.
그런데도『윙윙』소리는 자꾸 울려왔다.
「플라타너스」의 가로수 사이를 뚫고 멀리서 울려퍼지는 고양이 목줄의 방울소리일까. 아니면 검은「레이스」의 반호장을 두른듯, 보이는 창문「그리유」(grille)틈으로 새어나온 어느「스위트·홈」의 그릇설거지 소리일까
나보다 나이 어린 수염달린 사나이들이 아저씨같더니만 아침식사 쟁반을 들고『봉주르·마담!』하고「노크」하는「마드뫄젤」을 보고 여학교에 다닐 때 상급생 언니를 대하는것같은 묘한 착각. 나는 도대체 지금 몇살먹었는가. 잠이 안오길래 그토록 잠이 안오길래 두알 먹으면 즉각 듣고. 세알 먹으면 저세상으로 간다는 수면제를 구해서 두알먹고 눈찔끔 감아보았지만 머리는 한결더 초롱초롱 해지기만 하니 내신경은 도대체 어떻게 된걸까.「파리」는 변학도도 없는데 그리운 나의 임은 암행어사가 되어 올려고 소식 한 장 없는것일까.
「파리」는 참좋다. 아늑한 기분 세련된 빚깔「이베트·지로」의「샹송」같이 들려오는 대화소리. 미소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분위기. 속삭이듯 내리는 밤비. 비에 촉촉히 젖은 장미,「아네모네」의 모습. 그렇게 좋다면서 나는「파리」에 있는데 왜 흐느껴우는 것일까
글·그림
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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