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 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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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월부터 10월 말까지의 교통사고는 2만6천7백44건을 기록한다. 이 통계는 좀더 풀어볼 필요가 있다. 하루 평균 사고는 89건, 적어도 20분에 한건씩은 사고가 발생하는 셈이다.
이 사고로 중상을 입은 사람은 3만2천1백59명이나 된다. 하루 평균 1백7명. 15분에 한명씩은 차량 밑에 쓰러져 신음하는 셈이다. 그러나 생명을 잃는 경우에 이르러선 다만 참담할 뿐이다. 교통사고 사망자는 10개월간 2천2백28명을 기록한다.
이 통계에 따르면 적어도 8백80명에 한명은 교통사고로 인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고 있다, 이런 사고는 해마다 증가만 할뿐 조금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 비하면 사고는 32·8%의 증가율을 보여 준다. 사망율도 자연히 사고율과 함께 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15·8%가 그 증가율이다. 부상자는 그보다 훨씬 높은 31%를 기록했다.
교통사고는 당사자에겐 형언할 수 없이 비참한 일이며, 그 가족에겐 이를데 없는 고병이다. 이런 지옥풍경이 한날 한시도 쉬지 않고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다. 세상은 점점 공포만 불어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문명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필연적으로 그 뒤를 따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문명이 안겨준다는 행복의 무지개는 날로 우리의 생활과는 멀어만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명은 인간에겐 필요악이나 다름없이 되었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사고의 대부분이 다만 인간의 실수로 인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치안국의 분석은 그 78·5%가 운전자의 법규위반에 의한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우열을 풍자하는 하나의 만화같기도 하다. 기계문명의 발전보다 인간의 이지적 발달이 느리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희화인가. 인간은 스스로이 팔과 다리를 절단하는, 때로는그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기계의 능숙한 운전자가 되어 가고 있으니 말이다.
바꾸어 생각하면 78·5%의 사고는 인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능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이다. 이것은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기보다는, 인간과 인간 자신의 피나는 결투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 야만적인 투쟁에서 피를 흘려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선 이 수치스러운 싸움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아야할 것이다. 교통 행정가의 이성이 실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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