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제의 진화 … 치료 패러다임도 달라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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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양 전문 간호사가 암환자에게 항암제를 투약하고 있다. 암세포를 파괴하는 항암제는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암환자의 생존율을 높인다.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2010년 전이성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항암제 치료를 시작한 김미숙(가명·51·서울 마포구)씨. 항암제 독성이 강해 늘 속이 메스껍고 피곤했다. 입안은 헐고 머리카락도 빠졌다. 5차례나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기대보다 효과가 떨어졌다. 결국 암세포는 뼈는 물론 간·폐까지 퍼졌다. 김씨는 최근 항암제를 한 차례 바꿨다. 담당 의사는 “림프절과 뼈로 전이된 암세포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방암 환자인 직장인 박은경(가명·37·경기 성남시)씨. 회사를 쉬고 싶어도 병원비 걱정에 계속 다니고 있다. 문제는 월 2회씩 연차를 내 병원에서 항암주사를 맞는다는 다는 것. 회사에서 이해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면목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요즘엔 달라졌다. 항암제를 바꾸고 치료 시간이 줄었다. 박씨는 “병원에 와서 한 시간 정도면 진료가 끝난다”며 “조금만 서두르면 연차를 사용하지 않고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약물 내성 해결이 표적항암제 숙제

암 치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암을 불치병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엔 암을 고혈압·당뇨병처럼 관리하는 만성질환으로 본다. 분당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지현 교수는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암 완치 판정을 받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엔 치료가 힘들었던 말기 암 환자의 생존기간도 늘었다.

항암제는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한다. 우선 암세포가 성장·분열하는 과정에서 개입해 DNA의 합성이나 세포분열을 방해하거나 DNA 자체를 직접 파괴하는 일반 항암제가 있다. 또 하나는 암세포가 증식하는 경로를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표적항암제다.

일반 항암제는 세포의 특성을 활용해 암을 치료한다. 세포가 분열해 숫자가 늘어날 때 공격한다. 다시말해 정상세포와 암세포를 구분하지 않는다. 서울아산병원 혈액종양내과 정경해 교수는 “암세포는 정상세포보다 빠르게 분열해 항암제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며 “이런 식으로 여러 차례 반복해 암 세포를 제거한다”고 말했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만 골라 공격한다. 하지만 모든 암 환자가 대상은 아니다. 김 교수는 “표적항암제는 특정 암 유전자가 있는 사람에게만 효과를 보인다”며 “암 마다 비율이 다르지만 유방암 환자의 경우 10명 중 2명 정도만 해당된다”고 말했다.

약물 내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를 직접 죽이지 않는다. 암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신호를 차단해 간접적으로 굶겨 사멸을 유도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암 세포 역시 항암제에 대응한다. 이전보다 더 튼튼한 우회로를 만든다. 김 교수는 “결국 암 덩어리가 다시 커진다. 표적항암제만으로는 암 완치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생존율 높고 구토·탈모 등 부작용 줄어

항암제도 진화하고 있다. 김지현 교수는 “약효를 높이면서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항암제로는 할라벤(유방암)·제브타나(전립선암)·알림타(폐암) 등이 있다.

할라벤과 제브타나는 기존 항암제로 실패한 환자의 생존기간을 늘렸다. 전이성 유방암환자 508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 결과 할라벤 투약군은 기존 항암제 치료군보다 평균 생존기간이 2.5개월 연장됐다. 정경해 교수는 “유방암으로 진단받는 환자의 47.5%는 진행성”이라며 “요즘엔 30~40대 젊은 유방암 환자도 많아 생존기간을 늘리는 치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브타나 역시 기존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재발한 암환자의 사망위험을 30% 감소시켰다. 알림타는 지속적으로 항암제를 투약하면서 치료 효과를 높였다.

치료 편의성도 개선됐다. 기존 항암치료는 통상 3~4시간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 호흡곤란·저혈압·경련 같은 부작용을 억제하는 치료가 필요해서다. 할라벤은 이런 부작용을 없앴다. 병원에 머무는 시간 역시 1시간 이내로 줄어 투약을 받는 날 일상생활도 가능하다.

정 교수는 “구토·설사·탈모 같은 부작용을 줄이거나 나노 물질과 결합해 암세포에 항암제가 더 많이 작용하도록 만든 항암제도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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