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HW '따로 팔 필요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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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원한다고 항상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노력하다보면 원하는 것을 우연찮게 찾을 수도 있고, 필요한 것을 얻을 수도 있다" -롤링 스톤, ‘당신이 원한다고 항상 가질 수는 없다'

실리콘밸리의 경영자들 대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가 하드웨어 비즈니스보다 더 나은 사업 모델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어찌 보면 이들의 생각은 더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한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일 것이다. 거의 0에 가까운 변동 원가에, 소프트웨어 산업은 근본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하드웨어 업체보다 덜 자본 집약적이다. 저자본과 높은 판매 이익이 결합하면 시장에서도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경영자 입장에서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싫어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언뜻 보기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명백한 이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생업체들은 소프트웨어 대신 하드웨어를 판매를 ‘선택’하고 있다.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소프트웨어는 확실히 더 나은 사업 모델임이 분명하지만 바로 여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가로등 바로 밑에서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며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있는 어떤 남자에 관한 오래된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 남자가 열쇠를 잃어버린 곳은 사실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가로등 밑에서 열쇠를 찾고 있냐고 묻자 이 남자는 엉뚱하게도 “여기가 더 잘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실 소프트웨어 사업 모델이 훨씬 불빛도 밝고 더 잘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델을 수행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신생업체의 경우에는 더욱 어렵다. 전략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매우 상호 의존적인 사업모델을 갖고 있으면서 사업 모델이 훨씬 좋다고 해도 성공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어둠 속에서 비치는 희망의 불꽃

그동안 하드웨어 판매에도 '사업 모델' 요소가 개선되는 등 업계의 상황이 달라졌다. 가장 큰 요인은 표준화와 하드웨어 부품을 구하기 쉽다는 것이다. 특히 일반적으로 구입하기 쉽고 사용하기도 쉬운 인텔 기반의 1유닛 서버들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결론적으로 하드웨어 사업은 독자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없이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이렇게 흔히 구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이더넷과 TCP/IP의 보편화, 그리고 리눅스·BSD 같은 무료 운영체제 등의 여러 가지 조건을 잘 구성하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소프트웨어까지 잘 만들 수 있다면 그 소프트웨어를 상자(하드웨어)에 담으면 그만인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많은 판매업체들이 만들어내는 1유닛 서버를 사용하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하드웨어 모델을 선택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고객들이 손수 공개 플랫폼용으로 설계된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현재의 관행에 대해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소프트웨어 하나를 판매하고 설치 작업을 해주고, 관리하고 또 믿고 사용하게끔 하는 등 이 모든 것을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는지 고려한다면 왜 고객들이 점점 더 공개 플랫폼보다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탑재된 하드웨어를 더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신생업체들로서도 ‘하드웨어 일체형 소프트웨어’라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면 비용도 더욱 절감시킬 수 있고 되고 제품을 제작하는 것도 용이해진다.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꼼꼼하게 따져보자.

- 개발 복잡성과 품질 보장
어떤 이들은 신생업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소프트웨어 개발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하드웨어 개발 계획까지 포함시키는 것보다 쉽지 않겠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개 플랫폼을 기반으로 작업하게 되면 개발자들은 소프트웨어 코드가 모든 상황에 맞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하드웨어 판매업체들과 그들이 어떤 운영체제를(그리고 그 중에 어떤 버전을) 선호하는지, 그리고 어떤 주변 기기 판매업체들과 주변 기기의 여러 가지 버전들은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 등을 다 고려한다면 거의 끝도 없이 테스트를 해야 한다. 차라리 단일 하드웨어 플랫폼을 고르게 되면 위험 발생 가능성이나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도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 성능
성능을 생각하는 소프트웨어 판매업체라면 다양하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사양을 갖춘 하드웨어보다 단일 하드웨어를 선호할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개발자들은 당장 필요한 업무를 시행하기 위한 하드웨어 성능과 시스템 소프트웨어(운영체제와 드라이버 포함)를 고정시킬 수 있다면 소프트웨어를 가장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개발자들은 불필요한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코드나 기능 등을 감안할 필요도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꼭 필요한 기능을 위해 좀더 많은 자원을 제공할 수 있고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 보안
현재 CIO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면 보안 문제일 것이다. 보안에 있어서도 하드웨어에 처음부터 보안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 공개 플랫폼 시스템에 비해서 한 가지 하드웨어에서 사용하도록 설계된 경우라면 시스템 침입을 더욱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데이터가 들어오는 지점을 제한하게 되면 보안 취약점도 최소화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에 보안 코드를 내장시켜버린다면 사용자나 해커가 보안 시스템을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든다.

- 설치 작업
단순한 전원 스위치와 I/O 포트(이더넷의 잭)만 있는 1유닛 서버를 구입한다면 설치는 너무나 간단할 것이다. 플러그를 꽂고 전원스위치를 켜면 된다. 하지만 공개 플랫폼 소프트웨어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은 IT 부서에서 설치와 설정, 튜닝은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해줘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하드웨어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들은 본질적으로 더 단순하고 설정하기도 비교적 용이하다.

- 제품의 견고성·안정성·고객 서비스
공개 플랫폼 소프트웨어가 잘못되는 경우에 사용자들이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은 수없이 많겠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면서 다른 사람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일한 서버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연락할 곳이 한 군데밖에는 없는데다가, 중요한 것은 단일 기능의 정적인 시스템의 경우에는 문제가 될 일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특징은 시스템 침입을 조금도 허용할 수 없는 네트워크 레이어에 좀더 가까운 애플리케이션인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 가격
소프트웨어의 가격을 정하고 나서 그 수준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특히 소프트웨어 기능이 애플리케이션 레이어보다 네트워크 레이어에 좀더 가까울 때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여기서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구입할 때 끼워주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인식의 문제일 것이다. 즉 사람들은 손으로 직접 만질 수 있고 보거나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돈을 내는 것은 좀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것은 다수의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공개소스로 나와 있다는 점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회사에서 만든 소프트웨어가 무료로 배포되는 다른 유사 소프트웨어에 비해 분명히 더 낫다고 해도 무료 제품과 경쟁하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 판매
공개 플랫폼 소프트웨어라는 접근법을 고려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존 하드웨어 판매업체들의 고객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MS의 경우에는 IBM이 있었고, 베리타스 경우에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드웨어 판매업체들도 과거의 실수로부터 많이 배웠기 때문에 요즘은 유리해 보이는 공급 계약조차 서명하길 꺼려하고 있다. 하드웨어 판매업체들도 이제는 그 제품이 시장에서 증명될 때까지는 공급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는 이 회사들도 직접 판매를 통해 일찌감치 인기를 끌어야 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드웨어 일체형 소프트웨어’ 모델을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방화벽 시장은 이같이 하드웨어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시장이다. 체크포인트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공개 플랫폼 사업 모델로 방화벽 시장을 개척했다. 그러나 이후 넷스크린과 같은 판매업체들은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공급 시스템을 채택했고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2002년 6월의 인터넷 시큐리티 보고서에서 분석가 밥 램은 2001년도 방화벽 시장의 50% 이상이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게다가 램은 2005년까지는 방화벽 시장 가운데 70%가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램에 의하면 “체크포인트는 소프트웨어 기반의 아키텍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리해 보인다. 일부 고객들은 소프트웨어 기반의 아키텍처가 시장에 나와있는 유사한 제품들에 비해 설치하기에 더 어렵고 성능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후 위협을 느낀 체크포인트는 자기네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하드웨어 일체형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노키아같은 회사들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

물론 이같은 이론은 하이엔드 애플리케이션보다 방화벽이나 웹 서버, 보안 장비, 저장 솔루션 같이 특수한 기능만을 목적으로 한 소프트웨어에 국한된 사례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SAP에서 갑자기 하드웨어 기기를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같은 기능성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들은 하이엔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들에 비해 좀더 단일 업무 중심적이고 굳이 주문 생산할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기능성 애플리케이션들의 성능을 판단하는 기준은 주로 효율성과 업무 처리량, 제품의 품질 그리고 가용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특징들은 정적인 하드웨어 설치 환경에서 더 효과적일 것이다.

소프트웨어 공급 모델을 선호하는 3가지 이유는 판매이익이 더 높고, 자본이 덜 들 뿐만 아니라 가치가 더 높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매장에 가서 보면, 90% 수준의 소프트웨어 판매로 인한 수익은 꿈도 꿀 수 없지만, 70%를 상회하는 판매이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델 컴퓨터 등 주문 제작형 제조사들은 주문이 들어오면 하드웨어를 재조립한 다음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재고가 남을 위험도 없게 되고 자본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식 시장에서도 이같은 새로운 접근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넷스크린의 주식 거래 양상을 살펴보면 현재 선주문이 6.5배에 이른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요즘에는 특히 웬만한 소프트웨어 회사들보다 사정이 좋은 편이다.

자료제공 : ZDNet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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