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對北 강경대응 불가피'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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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놓고 한국과 미국이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CIA)국장 등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은 "북한이 현재 한두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에 반해 김석수(金碩洙)국무총리의 국회 답변 등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북한이 핵무기 한두개를 제조할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했으나, 핵무기 생산 여부에 대해선 확인된 바 없다"며 추정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1994년 당시 CIA 국장이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무기 한두개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한 뒤 지난해까지 북핵 문제에 대해 이같은 판단을 고수해 왔다.

최근 북핵 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는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지난해 12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가 이를 취소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테닛 국장의 발언은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 내용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CIA 국장의 관련 발언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결국 테닛 국장의 발언은 북한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앞으로 대북정책에 강경 대응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한.미가 입장 차이를 보임에 따라 과연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IAEA의 핵사찰을 거부하는 특정 국가의 핵무기 보유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크게 세가지다.

해당 국가가 핵 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 선언하는 것과 핵실험 실시 여부, 그리고 핵물질 보유 여부와 핵무기 제조기술 수준으로 판단하는 방법 등이다. 북한은 아직 핵 보유를 선언하지 않았으며 핵실험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현재 핵무기 한두개를 만들 수 있는 10~12kg의 플루토늄(Pu239)을 보유한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또 핵무기 개발 관련 기술의 핵심은 '고폭(高爆)장치'인데,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조잡한 수준이긴 하나 고폭장치를 개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폭장치는 핵탄두 속에 분리돼 있는 핵물질을 약 1백만분의 1초 내에 임계(臨界)상태로 압축시킨 뒤 폭발이 일어나게 만드는 기폭(起爆)장치. 북한은 83년부터 고성능 폭발실험을 70여회 실시했으며, 93~98년에 핵실험의 전단계인 완제품 고폭장치 폭발 실험을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핵실험을 하지 않았음에도 무기급 핵탄두를 보유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 바 있어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재로선 가능성일 뿐이며 미국처럼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할 만한 증거는 없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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