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과를 끝낸 텅빈 근무장에 뚱보 김상병이 편지 쓰기에 열을 낸다. 또 시작인가. 회답 안오는 연애편지「미지의 아가씨에게」로부터 시작하여 깨알같은 글씨로 만리장성이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문장이 쏟아져 나올까. 하루이틀이 아니고 한참 내려다보니 눈이 멈춘 곳『아가씨 2주동안 보낸 글이 무려 50여통 그중 한번도 회답이라고 받아보지못한. 이사람 다시한번 생각해보시오. 전우들은 저를 편지광이라고 합니다. 단한번이라도 회답을 받을수 있다면 어깨를 으쓱해 보겠는데…소원입니다. 꼭 회답주시오.』
이제는 솔직하게 애원하는 것을 보니 측은한 생각이 들고 너무나 야속한 인심에 내가 흥분된다. 한동안 생각해 보던 나는「위조」연애편지를 작성하기로 했다. 제법 여자의 감정을집어넣어 가면서 쓰기를 끝내고 고운 단풍잎까지 집어넣었다. 문제는 발신인 주소가 난관이다.『서울에서 희야가』로 했다. 소인이 찍힌 우표를 떼어 붙이니 누가 위조라 할까?
우체부 김일병에게 넘겨주고 문을 나서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내일 뚱보의 어깨가 으쓱해지겠지. 이렇게까지 받고 싶은 글을 기다리는 외로운 병사는 비단 김상병 뿐만 아닐것이다.<이대학·상병·25·군우151-301-988전단 대간첩작전 통제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