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하우스푸어 주택 500채 사들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최모(35)씨는 경기도 화성 동탄1신도시의 전용면적 81㎡짜리 아파트에 산다. 한창 주택경기가 좋았던 2006년 3억원을 대출받아 3억8000만원에 이 아파트를 샀다. 하지만 지금 시세는 3억2000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집을 내놓은 지 1년이 넘도록 팔릴 기미가 전혀 없다. 최씨의 속만 타들어갈 뿐이다. 그는 “대출 이자로 한 달에 116만원씩 내고 있는데 올 들어 이자를 연체한 적도 있다”며 “이러다 자칫 집이 경매로 넘어갈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처럼 집이 팔리지 않아 고민인 ‘하우스푸어’에게 비상구가 열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24일부터 28일까지 이들의 집을 사주기로 했다. 집을 판 뒤에는 최장 5년 동안 같은 집에서 임대로 계속 살 수도 있다. 5년 뒤 원하면 집을 되살 수 있는 우선권도 갖는다.

 LH는 13일 이런 내용의 ‘하우스푸어 주택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LH는 1500억원 규모의 희망 임대주택 부동산투자회사(리츠)를 통해 총 500가구를 사들일 예정이다. 매입 대상은 1가구 1주택자가 소유한 전용면적 85㎡ 이하, 공시가격 9억원 이하 아파트(300가구 이상 단지)다.

 절차는 일반적인 집 팔기에 비해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집주인이 매입 신청서에 원하는 집값 등을 적어낸다. 그러면 LH가 서류심사와 1차 감정평가를 실시한다. 집이 너무 오래됐거나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판단되면 매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류심사에선 매입 대상의 두 배인 1000가구가 추려진다.

이후 LH 직원이 현장실사를 나가 신청서에 적힌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한다. 그리고 2차 감정평가를 하고 최종 매입 대상 500가구를 선정한다.

 집이 팔릴 가능성은 집주인이 매입 신청서에 원하는 집값을 적게 써낼수록 커진다. 감정가격 대비 집값 비율이 낮은 순으로 집을 사들이는 역경매 방식이어서다. 예컨대 A씨가 감정가격이 1억원인 집을 8000만원(감정가 대비 80%), B씨가 감정가격 2억원인 집을 1억5000만원(감정가 대비 75%)에 각각 써냈다고 하자. 그러면 LH는 감정가 대비 비율이 낮은 B씨의 집을 우선 사들이게 된다. 집주인이 써낸 집값이 감정가보다 높으면 감정가를 써낸 것으로 간주된다. 원래 집주인이 5년 뒤 집을 되살 때는 해당 시점의 감정가격이 적용된다.

 전문가들은 당장 급하지 않으면 중개업소에 급매물로 집을 내놓는 것과 LH에 집을 파는 것 중 어느 쪽이 유리할지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통상 감정가는 시세의 90% 수준에서 결정된다. 만일 감정가 대비 집값 비율이 90%라면 일반적인 시세보다 20% 이상 싸게 판다는 의미다.

 홍석민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실장은 “무리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직전 상태에 놓인 하우스푸어라면 LH에 집을 파는 것이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같은 가격이라면 LH에 집을 파는 것이 급매로 처분하는 것보다 유리하다”며 “5년간 계속 거주권과 5년 뒤 우선 매입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출금이 집값을 초과하는 이른바 ‘깡통주택’은 LH의 주택 매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남상오 주거복지연대 사무총장은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다 갚을 수 없는 진정한 하우스푸어에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깡통주택’ 문제를 해결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주정완·황정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