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개스 중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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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찬 서리가 내리고 낙엽이 흔들리는 가을이 또 다시 찾아왔다. 상강이 지났으니 앞으로 보름이면 곧 입동이 다가서게 된다. 정녕 겨울의 문턱에 다다른 감이 든다. 해마다 이맘때면 아궁이의 사신(死神)은 우리들의 귀한 생명을 위협하기도 했고 빼앗아 가기도 했다. 지난 이른봄의 어느날 이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옆에 누운 둘째딸이 세상에 태어난 지 백일을 하루 앞두고 사인도 모르게 죽어 있었다. 그 순간 나와 아내의 비통이란 이무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황급히 의사를 데려다 알아보니 연탄「개스」중독이 사인이라고 했다. 이 얼마나 허무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며 한국적 비애인가.
수년전의 일이지만 신혼부부가 인천송도「호텔」에서 인생의 찬란한 첫 날밤을 지새우기도 전에 방 틈으로 스며든 연탄「개스」는 그들의 단꿈을 영원히 삼킨 일이 있었고 며칠 전에는 손님이 여관방에서 자다 연탄「개스」로 목숨을 잃어 여관주인이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구속이 되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이 엄청난 연탄「개스」란 무취성 독소는 한 겨울이면 수 없이 많은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이 비일비재하게 보도 되고있다.
하기야 연탄「개스」를 막기 위해서는 아궁이의 개선과 온돌의 손질도 가장과 아내의 할 일 이겠지만 서민경제가 용납되지 않으니까 겨울이면 서민층에서는 늘 평화로운 잠을 마음놓고 잘 수 없게 된다. 국가의 경제가 공업이 발달하여 석탄에서 기름을 짜내고 연로를 기름으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 조심하고 보살펴 연탄「개스」로 인하여 발생하는 불의의 불상사를 막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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