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퇴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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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두달후면 아버지가 30년이 넘는 세월을 몸 받쳐 오신 『농협』을 떠나야 한다. 정년 퇴직이시다. 쓸쓸할 수밖에 없는 사색의 가을과 함께 아버지는 그곳을 나오셔야 한다. 그 많은 세월을 아버지는 일과 우리 5남매를 위해 살아 오신 셈이다. 딸의 입장에서 진정 무엇이라고 위로해 드려야만 되는것일까.
○…퇴직후의 생활을 위해 마련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늘의 환경은 아버지가 편안하실수가 없는 안타까움. 아직은 미숙한 우리들. 유일한 아버지의 재산이라면 5남매를 길러 내신 것뿐이다. 남에게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던가. 그러기에 우리들은 밝고, 때묻지 않은 채 성장해 온 것이다.
○…『고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기쁨과 보람된 날이었다』고 되새길 수 있도록 우리 5남매는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 딸로 성장하여야지. 그것만이 피로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는 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젊으신 우리 아버지께서 무료한 나날을 소일 할 수 있는 일터는 없을까. 아버지의 고적감을 드리고 싶지 않은 딸의 작은 마음 쓰임이 이루어 질 길은 없을까. 5곡이 익어가는 풍성한 들길에서 나는 왜 이렇게 울 먹여지는지 모르겠다.

<이상숙·충북 진천군 진천면 읍내리 l44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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