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이락」의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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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백림사건 심리에 간여했던 최윤모(52) 대법원 판사의 돌연한 사표제출과 서울고법 김병룡 부장판사의 사퇴는 괴벽보사건과 관련해서 조용했던 사법부에 파문을 일게 했다. 16일 상오 사표가 수리될 때까지 잔무정리를 하러 나온 최판사는 동백림사건의 주심판사였던 주운화판사실에서 윤두식 김선 대검검사와 임기호 서울민사지법원장, 김택현변호사(전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와 만나 신문에 보도된 자신의 거취에 대한 해명을 하기에 열을 올렸다.

<사법부에 큰 충격|"용공으로 몰리면서까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나."|정의구현 각오 지금은 고역>
윤·김 두 대검검사는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괴벽보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검찰의 간부로서 미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 대법원판사는 최판사의 사퇴는 괴벽보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은 동료판사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법부 전체 특히 법률과 양심밖에 모르는 대법원판사들에게 충격을 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수사기관의 손이 미치지 않는 범인이 있다는 것은 사회질서를 위해서도 슬픈 일』이라고 요즘의 심경을 밝히면서 「김일성의 판사」로까지 몰리면서 이자리에 있어야만 하는가를 하루에 몇 번이나 생각하게 된다.
그는 개인적인 사정(경제적)으로보아 최판사보다도 자신이먼저 그만두어야했을 것인데 용기가없어 주저해왔다고 최판사의 용기를부러워했다.
변호사를 개업할 경우 항간에서 들리는대로 30안팎의 판·검사들에게 머리를 숙여야 하고 교제를 해야하는데 이런 자신이 없고, 수입의 예상에 주저하게 됐다는 것.
『시기적으로 나의 사퇴가 괴벽보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는 것은 「오비이락」격이라고 여러번 해명했는데도…. 어젯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이런 억측이꼬리를 물게되는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국민들은 대법원판사의 자리를 하나의 명예와 감투로 생각해서 괴벽보사건이 아니면 어떻게 그런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냐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최판사는 처음 대법원판사에 임명됐을때는 가벼운 흥분도 느끼고 정의구현에 온갖 정열을 불태울 각오도 했었다고했다.『대법원 판사생활8년에 이 자리를 고역으로 생각하게됐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없고, 재판기록은 집에 가져가 보아도 끝이 안날정도로 늘기만하고…』그 자리가 고역으로만 생각될 때 누구나가 물러서는데 주저함이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고법 김병룡부장판사가 16일 일신상의 이유로 사표를 냈다. 김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사표를 낸 최윤모대법원판사와 변호사개업을 같이 할 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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