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계 "정치세력으로 친노 이제 무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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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에서 권양숙 여사가 헌화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노무현정부 인사와 여야 정치인 등이 참석했다. [송봉근 기자]

구름 없이 뜨거웠던 한낮의 봉하마을은 노란색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 추도식이 열린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묘역 옆에는 노 전 대통령 서거일(5월 23일) 즈음 가장 노랗게 피는 ‘갓꽃’이 넓게 피어 있었다. 시민 3000여 명은 노란 모자를 쓰고, 노란 티셔츠를 입고, 노란 바람개비를 들고, 노란 천막에 모였다. 주최 측이 마련한 쓰레기 봉투도 노란색이었다. 노란색은 민주당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당권이 노무현계에서 비노무현계로 넘어가면서 민주당의 색깔이 조금 변했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 시절의 진보적 강령을 중도적으로 변경하면서 상징색을 노란색 대신 녹색으로 택했다. 김한길 대표 등 새 지도부가 주도한 지난 16일 광주선언 발표식 때도 녹색이 노란색을 대신했다.

 이날 추도식엔 야당뿐 아니라 여권 인사들도 눈에 띄었다. 사회를 맡은 명계남 노무현재단 상임운영위원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에 이어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김한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송영길 인천시장, 최경환(새누리당)·전병헌(민주당) 원내대표, 문재인 의원 등의 순서로 소개했다. 그러곤 “특별히 청와대 이정현 정무수석이 참여해 줬다”고 사의를 표했다. 추도식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던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전날인 22일 묘역을 찾았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국민참여 확대, 특권의식 철폐, 정치개혁과 같은 노 전 대통령의 가치에 여권도 함께함으로써 국민통합에 도움이 되고자 추도식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정현 수석은 ‘임을 위한 행진곡’ ‘상록수’를 같이 제창하고 “노무현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는 구호도 빠짐없이 따라 했다.

 하지만 추도식의 주인은 역시 노무현계였다. 추도식은 대선 패배 이후 친노 인사가 가장 많이 집결한 행사였다. 추도식에 참석한 시민들은 특히 문 의원에게 가장 큰 환호를 보냈다. 그가 걸어갈 때마다 많은 사람이 둘러싸 사진 찍기를 청했고, 사인을 받았다.

 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정치 현안에 대해 모처럼 언급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독자세력화에 대한 질문에 문 의원은 “안 의원이 신당을 만드는 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며 “정치에 대한 시민참여의 외연이 넓어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경쟁을 통해 (야권이) 혁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솔직히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독과점 구조 속에 안주한 측면이 있는데, 그런 게 무너지면서 정치적 경쟁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문 의원은 “끝내는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국민을 분열시키지 않고 (두 세력이)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라며 “다음 대선 때 정권교체에 도움이 되도록 나름대로 제 역할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재도전 여부에 대해선 "여기까지 하자”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송영길 시장은 “안철수 현상에 담긴 뜻은 공감하나 아무리 새것이라고 해도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낮추는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라면 새 희망을 꺾는 행위”라고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노무현계는 아직도 민주당에 적잖은 세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문 의원을 필두로 대부분 2선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다. 집결한 친노 인사들은 정치 계파로서의 친노는 사실상 해체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인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은 “가치로서의 친노는 앞으로 계속되겠지만, 정치세력으로서의 친노는 이제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던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정파로서의 친노는 원래 없었다. 새로운 개혁세력이 등장할 때가 됐고, 그것에 (가치집단인) 친노도 함께 참여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추도식엔 당 지도부에 대한 고성이나 욕설은 없었다. 지난 10일 봉하마을에서 김 대표에게 “부관참시를 하러 왔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명씨는 이날 기자에게 “오늘은 대본대로 할 테니 걱정 말라. 싸움이 나면 내가 말릴 것”이라고 했다.

김해=강인식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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