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지하로" vs "비용 커 불가" 7년째 접점 없는 밀양 송전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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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위평마을 화악산 중턱. 주민 50여 명이 경운기·트랙터 7대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공사 차량 진입을 막았다. 한국전력공사가 8개월 만에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려 한 때문이다.

60대 이상이 대부분인 노인들은 격앙돼 있었다. ‘765KV OUT’이라 적힌 파란색 조끼를 입은 주민은 “70대 노인들만 있는 마을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냐, 그냥 죽을 때까지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며 “고압전선이 지나가면 암이 생기고 건강이 나빠지는 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주민은 “공사가 강행되면 목을 매겠다는 뜻”이라며 나무에 묶어둔 밧줄을 가리켰다. 이날 주민 3명이 다쳐 밀양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문제의 송전탑은 울산시 울주군 신고리원전 3호기~경남 창녕군 북경남 변전소까지 765㎸를 송전할 90.5㎞ 161기 가운데 밀양 구간 52기다. 신고리 3호기는 오는 12월 준공돼 송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한전은 겨울철 전력난에 대비해 공사를 서두르고 있다. 송전 구간 중 인근 울주·양산·기장·창녕 지역은 공사를 마쳤지만 밀양시 부북·단장·상동·산외 등 4개면 25개 마을 주민이 여전히 반대하고 있어 공사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전의 765㎸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는 경남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평밭마을 주민들이 20일 마을 입구에 로프를 설치해놓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밀양=송봉근 기자]

 밀양 주민들은 정부의 사업 발표 8개월 만인 2008년 7월 첫 송전탑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전이 보상안을 냈으나 주민들은 “그냥 이대로 살게 내버려 달라”고 버텼다. 국민권익위가 2009년 12월부터 6개월간 23차례 갈등조정위원회를 열고, 한전과 주민이 18차례 대화를 했으나 소용없었다.

 왜 7년간이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을까. 밀양 지역의 송전탑은 수도 많지만 면소재지나 학교, 마을 근처를 지나는 경우가 많다. 주민들이 보상안을 받아들이기보다 건강 침해를 주장하며 강경입장을 유지하는 이유다. 그러던 중 지난해 1월 16일 주민 고 이치우(당시 74세)씨가 분신자살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숨진 이씨의 밭에도 송전탑은 설치될 예정이다.

 또 송전탑 반대대책위 등이 꾸려지고 송전탑 건설이 전국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일은 더 꼬여갔다. 반대 조직에는 전교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환경운동연합, 민주노총, YMCA과 통합진보당 등 90여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주민들의 주장과는 별도로 이들은 송전탑이 이미 계획된 신고리 5·6호기 때문에 필요한 것으로 판단해 송전탑 백지화는 물론 원자력발전소 추가 건립도 반대한다.

 한전의 초기 대응도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원개발촉진특별법’에 따라 적절한 피해보상이나 주민과의 진지한 대화 없이 공사만 강행하려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전은 또 송전탑 반대 주민 개인에게 보상금을 주는 ‘직접보상’ 대신 마을단위로 보상금을 주거나 농로 개설, 도로 포장 같은 ‘간접보상’안을 제시해와 합의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주민들과 한전이 맞서고 있는 가장 큰 쟁점은 지중화다. 주민대책위는 송전선을 땅에 묻는 방법만이 유일한 해결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전은 지중화에는 2조원이 필요하고 건설기간도 10년이나 걸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밀양=김상진·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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