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왜곡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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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 자민당이 “확정된 사실 이외엔 교과서 본문에 기술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7월 참의원 선거 공약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17일 보도했다. 산케이에 따르면 이 같은 방침은 16일 열린 자민당 교육재생실행본부의 ‘교과서 검정에 관한 특별부회’ 회의에서 정해졌다. 산케이는 “일부 역사 교과서에 보이는 편향된 기술을 시정하기 위해 7월 참의원의 종합정책집인 ‘J파일’에 이런 방침을 명기키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는 “현행 교과서 검정 제도하에선 출처와 출전 등을 제시하면 사실관계가 불확실한 난징사건(난징대학살)의 희생자 수도 검정을 통과할 수 있다”며 “중국 측의 과장된 주장인 ‘30만 명 사망설’도 기술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자민당이 왜 새로운 규제를 교과서 검정 기준에 포함시키려는지 의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3월 말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되자 일본 내 우익 세력은 “과장되고 오해를 부르는 기술이 많다”며 난징대학살,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거론했다. “난징사건의 희생자 수에 대해 일본 국내엔 ‘수만 명 설’, 심지어 학살이 없었다는 ‘학살 부정파’까지 있지만 일부 교과서는 중국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며 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과거사를 ‘확정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규정해 교과서 본문에서 제외시키는 방법으로 역사왜곡에 나서겠다는 게 자민당의 속내인 셈이다. 자민당은 지난해 말 중의원 공약에도 “복수의 설이 있는 경우엔 다수설과 소수설을 명기하고 수치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교과서 검정 기준을 포함시켰다. 확정되지 않은 내용은 아예 본문에서 빼겠다는 건 여기서 한발 더 나간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학술적으로 확정됐는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란 문부과학성 간부의 말을 전하며 자민당 공약의 비현실성을 지적했다. 한편 ‘역사 기술에서 한국과 중국 등 이웃나라를 배려한다’(근린제국 조항)는 검정 기준을 수정하겠다는 방침은 지난 중의원에 이어 이번 참의원 공약에도 포함될 예정이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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