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63) 80년 5·17 쿠데타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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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7일 밤 임시국무회의가 열린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옛 중앙청) 회의장 주변에 무장한 수도경비사령부 병력이 1~2m간격으로 서 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비상계엄 지역을 다음 날인 5월 18일 0시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의결했다. 계엄사령부는 모든 정치 활동과 시위를 금지하고 대학에 휴교 조치를 내리는 계엄포고령 제10호를 발표했다. [중앙포토]

당시 청와대를 출입했던 성병욱 전 중앙일보 주필의 설명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한 5월 17일 오전 브리핑은 온건한 내용이었습니다. 급박한 상황이긴 했지만 오후 잠시 마음을 놓았죠. 그런데 이화여대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에게서 급한 연락이 온 겁니다. 군대가 덮쳤다고. 청와대 대변인과는 통화를 했는데 고건 정무수석과 연락이 안 되는 겁니다. 정무수석실 백형환 비서관에게 전화했더니 ‘부모님 댁에 갔다’고 해서 번호를 물어본 뒤 전화를 한 거죠.”

 1980년 5월 17일 오후 4시쯤 성병욱 중앙일보 기자(당시 정치부 부장대리)가 전화로 알려 온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외치듯 답했다.

 성 기자는 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청와대에서 온건한 수습책을 모색할 것 같더니 왜 군이 학생회장들 모임을 덮쳤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잠시 부모님 댁에 들렀습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청와대로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청량리 부모님 댁을 나와 청와대로 향했다. 오후 5시가 다 된 시각 청와대 본관으로 올라가는데 차창 밖으로 장성용 군 지프차 한 대가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설마.’ 차에서 내려 황망히 본관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불길한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상황은 이미 끝나 있었다.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했다. 수석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 실장이 말했다. “군부의 건의에 따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10·26 사태 이후 비상계엄령은 제주를 제외한 지역에 내려졌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군정(軍政)’을 의미한다. 우리가 올린 시국 건의서 내용과는 정반대였다.

 최 실장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군부의 건의는 일단 유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의결하는 임시국무회의가 저녁 9시에 열리니 거기에 참석하라”고 말했다.

 국무회의는 청와대 수석이 아닌 정무비서관이 배석하는 게 보통이었다. 정무수석의 국무회의 참여는 청와대가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를 찬성한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모양이 된다.

 이때 처음으로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불덩어리를 느꼈다. 나도 모르게 아주 격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내가 왜 거길 갑니까!”

 최 실장을 비롯해 모두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경식 경제수석이 서먹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말을 꺼냈다.

 “전두환 사령관이 말이야. 중정부장을 내놓으면 되는 건데.”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솔직한 발언이었다.

 이 수석이 침묵을 깨자 최 실장이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정무 쪽의 비서관이라도 배석시키시죠.”

 회의는 그렇게 짧게 끝났다. 청와대 본관을 나와 신관으로 내려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군정을 찬성할 수 없었다. 정무수석으로 계속 일한다면 군정에 동조하고 나아가 참여하는 입장이 된다. ‘물러날 수밖에 없다’.

 고심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내 사무실에 도착했다. 책상 앞에 앉아 사표를 쓰려고 용지를 꺼냈다. 그런데 국무회의에 비서관을 배석시키라는 최 실장의 지시가 생각났다. 어차피 그만두기로 한 마당에 그냥 떠나면 될 것을…. 직업 공무원의 한계다. 서둘러 국무회의에 배석할 비서관을 찾았다. 심재홍·안치순 비서관은 전화가 안 됐다. 세 번째로 김유후 법무담당 비서관에게 연락이 닿았다. 김 비서관에게 국무회의에 배석하라고 부탁하고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때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아니, 고 수석 왜 거기 계십니까. 국무회의에 올라가지 않고.”

 성병욱 기자였다.

 “내가 거기에 뭐 때문에 올라가요? 김유후 비서관이 갔습니다.”

 그에게 사표를 쓴다는 얘기는 안 했다. 가타부타 설명도 안 했다. 통화는 짧았다.

 다시 흰 종이를 쳐다봤다. 18년 공직생활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정리=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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