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시장’블룸버그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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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블룸버그 신임 뉴욕 시장은 창 밖으로 광장이 내다보이고 최고급 그림들이 걸려 있는 시장 집무실이 뭔가 불편한 모양이다. 그는 전임자인 루디 줄리아니가 앉았던 고급스러운 참나무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8주 동안 딱 두번 저 의자에 앉았다. 두번 다 이곳에 마이크를 설치하고 라디오 방송을 할 때였다.”

그는 여기보다 위층의 개방되고 널찍한 공간을 더 좋아한다. 트레이더 출신인 블룸버그는 이곳을 증권사 객장처럼 만들었다. 그와 부하직원들이 베이글과 커피를 들며 마치 트레이더들이 매도·매수 주문을 낼 때처럼 낮은 칸막이 위로 목청껏 대화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억만장자 시장은 “나는 언제나 사람들과 뒤섞여 일했다. 사생활은 집에서 누리면 된다”고 말했다.

언제나 괴짜 사업가로 유명한 블룸버그는 직원들 사무실에 어항과 간식 비치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 블룸버그가 시장 취임 1백일을 맞은 가운데 뉴욕 시청은 점점 그를 부자로 만들어준 미디어그룹 블룸버그 LP社의 자회사 같은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MBA형 대통령이라면 블룸버그는 월스트리트형 시장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매출 증대와 경비 절감, 강도 높은 근무가 강조되는 투자은행형 조직문화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고위급 인사 대다수는 베테랑 관료들이지만 관공소와는 거리가 먼 민간기업 출신들도 일부 영입됐다. 뉴욕 시민들은 시의 이같은 변화를 환영하는 듯하다. 일부 계층에서 트레이더 출신의 블룸버그는 법과 질서를 강조했던 줄리아니 前 시장보다 더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제 블룸버그의 이같은 사업모델이 냉혹한 현실의 시험대에 올랐다. 벌써부터 새 시장은 일정을 캐묻는 기자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세금을 올리자는 시의원들을 나무라기도 한다. 그는 9·11 테러 이후 입주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시내 금융가를 재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천재적인 사업감각으로도 50억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재정적자를 메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뉴욕은 현재 수십년만에 최악의 재정 위기를 맞고 있다. 최악의 경우 뉴욕은 1970년대처럼 독립적인 감독위원회의 관리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블룸버그의 세계에서 그것은 ‘적대적 기업인수’를 의미한다.

현재로선 블룸버그가 경영권을 굳게 지키고 있다. 지난해 시장에 당선될 때 그는 사재에서 총 6천9백만달러를 풀었다. 이는 표당 92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미국 선거 역사상 최대 액수다. 선거자금법 개혁론자들은 이 전술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을 테지만, 이것은 블룸버그가 거물급 기부자들과 정당에 진 빚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그는 명목상 공화당원이지만 최고위 보좌관은 무소속이다). 블룸버그는 “넓은 의미에서 시장도 최고경영자(CEO)다. 그리고 CEO에게 가장 중요한 두가지는 직원들을 뽑고 방향을 설정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을 보호하고 보상하며 업무상 장벽을 없애고 도구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CEO의 임무다.”

댄 닥터로프 뉴욕 부시장은 블룸버그와 같은 민간기업 경영자 출신이다. 그도 블룸버그처럼 단 1달러의 연봉을 받는다. 닥터로프는 “벤처투자사에 다닐 때는 널찍한 사무실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한평도 안되는 칸막이 속에서 일한다.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社 2년차 시절 이후 다른 사람과 사무실을 같이 쓰기는 처음”이라고 농담했다. 이들 기업체 출신은 새 환경에 적응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메릴린치社 출신으로 현재 뉴욕시경 법률고문으로 있는 스티븐 해머맨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기는 20년만에 처음인 것 같다. 너무 바빠 다이어트바로 끼니를 때울 정도”라고 말했다.

재정 압박을 받는 기업의 CEO가 그러하듯 블룸버그는 흑자 구현과 지속적인 고객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는 모든 부서에 20%의 경비 삭감을 지시하고 시청 차량을 70대에서 35대로 줄이는 등 시의 살림살이를 줄이고 있다(시장 자신도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한편 블룸버그는 이미 뉴욕의 공원 및 동물원의 명명권을 기업들에 판매하는 사업을 거론하고 있다.

시내가 복구되는 동안 기업들이 인근 코네티컷이나 뉴저지로 이주하는 것을 우려한 블룸버그는 뉴욕의 기업 친화성를 평가하는 설문지를 돌리고 ‘고객관리팀’을 주요 기업에 파견하고 있다. 지금까지 가장 큰 결실은 9·11 이후 맨해튼을 떠났던 임직원 4천명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社로부터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받아낸 것이다. 그 보답으로 블룸버그는 재건된 금융지구를 안전하게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앞으로 개인적으로 아멕스 카드만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카드사의 최고경영자 켄 셔놀트는 “그가 취임 전부터 많은 도움을 줬다. 일을 처리하는 추진력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줄리아니가 뉴욕의 경찰서장을 자임했다면 블룸버그는 영업책임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의 부하직원들의 임무는 블룸버그에게 뭔가 팔 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뉴욕시 예산 발표일 전날 측근들이 수수께끼 같은 약자들로 가득찬 슬라이드를 보여주자 블룸버그는 “나도 이해 못하는데 내일 아침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고 호통을 쳤다. 한편 그는 매일 밤 지루한 행사들에 꼬박꼬박 들르는 것을 유일한 시정 홍보책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무리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는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틀림없이 심장마비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가 뉴욕 예산을 수십억달러씩 감축하면서 동시에 인기를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이미 가차없는 비판으로 악명 높은 뉴욕의 언론과 사소한 마찰을 빚고 있다. 조만간 그는 자기가 회사를 경영할 때도 마주칠 일이 없었던 강성 노조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대부분 초선의원들로 구성된 시의회와 충돌할 경우 감독위원회만이 그들을 중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감독위원회가 시의회보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그들이 “더 현명하고 문제점을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시장에게 어울리는 정치적 발언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인이다. 근엄한 시장 집무실보다 복잡한 사무실을 선호하는 게 그 증거가 아닐까.

출처:뉴스위크 Matt Bai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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