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의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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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의회는 반드시 다수파에 의해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소수파도 합법적인 수단으로 얼마든지 의사진행을 방해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의회의 묘미이다.
영국의「프레드릭·노드」경이 수상으로 있을 때, 의회는 조선안을 놓고 여·야가 다투고 있었다. 이 법안이 특정상인을 위주로 되었다는 반론이 대단했다.
이때의 한「필리버스터」(의사 방해자)는 차라리 조선사를 강의하는 투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지금, 저 신사께서는 어느 시대까지 왔나?』수상은 견디다못해 옆자리의 각료에게 물었다.
『아직「엘리자베스 1세」시대입니다.』『그러면 아직 한두 세기는 잠을 자도 되겠군!』
이런 경우의 의사방해는「장시간의 질문연설」에 해당한다. 그 뒤 꼬리를 무는 각종 동의의 속출, 이런 동의의 선결문제가 되는 징계동의의 제출, 그 동의의 취지설명 의사진행 발언, 일신상의 발언…등등은 모두 합법적이고 계획적인「필리버스터」의 수단들이다.
결국 표결에 이르러서도 기명이냐, 무기명이냐, 기립이냐, 거수냐 등으로 또 한번 지연작전을 쓸 수 있다. 세계 의회사상 최고로는 1935년 미국 연방의회의 상원에서 기록된 15시간30분이다.「산업부흥법」의 개정반대에 대한 장연설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4시간반「계속 발언」이 기록될 정도이다.
독일의 정치학자「한스·켈젠」에 의하면 장시간 발언과 동의의 연발은「기술적인 의사방해」이며, 주먹을 휘두르고「마이크」를 빼앗는 폭력식은「물리적인 의사방해」이다.
의사방해가 상습적으로 되어버리면 의회정치는 사실상 마비되고 만다.「오스트리아」와 같은 나라는 법률에 의해 상습적인 의사방해에「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긴급명령」의 방법이 있다.
그러나 소수파의「필리버스터」는 다수파의 횡포에 대한 정당방위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의회정치 자체의 자살행위이다. 다수파는 의사방해를 상습화로 몰고 가지 않을 수 있는「운영의 묘」를 가져야 할 것이다. 새벽녘에 기습을 하는 식의「더티·플레이」는 물리적인 의사방해를 날로 개발하는 결과밖에 초래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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