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GA 우승자와 라운드, 어떠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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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3800만원. 지난해 시드 순위 50위권의 국내 남자 프로골퍼 A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상금이다. 한국 남자 프로골프의 냉정한 현주소다. 이 선수는 13개 대회에 출전하면서 대회당 평균 200만원 정도 경비를 썼다. 총비용으로 최소 2600만원이 들었다. 단순 셈법으로 하면 연봉 3800만원 중 손에 쥔 건 1200만원 정도인 셈이다. A는 국내에서 투어카드가 있는 선수 중에 50번째로 골프를 잘하지만 통장 잔고는 늘 비어 있다. 여자 프로골퍼는 어떨까. 지난해 같은 순위에 있는 KLPGA 투어 B선수는 5800만원을 벌었다. 프로스포츠에서 여자가 남자보다 인기와 부를 더 누리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 한국 골프에서는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시쳇말로 여자 프로골퍼들은 남자 선수와 격이 다르다. 투어에서 뛰는 108명의 여자 선수 가운데 33명이 상금으로만 1억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자다. 반면에 KPGA 투어 143명의 선수 중 1억원 이상의 상금 수익을 올린 선수는 17명에 그쳤다. KLPGA 투어의 절반 수준이다. 올해 KLPGA 투어는 25개 대회에 144억원의 총상금이 걸려 있다. KPGA는 14개 대회, 총상금 119억원에 불과하다. 올해 KPGA 투어 중 유러피언투어로 치러진 발렌타인 챔피언십의 상금 33억원을 제외하고 나면 총상금 규모는 86억원으로 곤두박질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 프로골퍼들은 “여자 골프의 인기가 반짝하다 말 것”이라고 가볍게 여겼다. “여자 골프 인기가 올라가면 남자 골프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라고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좀처럼 반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마침내 남자 골퍼들도 위기를 느끼고 뛰기 시작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회장 황성하)가 3일 코리안 투어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4대 부흥 프로젝트를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그 발상이 식상하지 않고 실용적이다. 갤러리에 대한 이벤트에서 남자 골퍼들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는 실행 계획은 각 대회 우승자와 갤러리의 무료 동반 라운드다. 대회 종료 직후 우승자가 갤러리를 대상으로 행운권을 추첨해 당첨자와 함께 대회가 열린 골프장에서 라운드하는 이벤트다. 당첨자는 우승자와 라운드 일정을 정하고 2명의 동반자를 더 대동할 수 있다. 일반 갤러리도 김대섭(32·우리투자증권), 홍순상(32·SK텔레콤), 박상현(30·메리츠금융그룹) 같은 내로라하는 선수와 함께 라운드를 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외국 선수가 우승했을 때는 가장 성적이 좋은 국내 선수가 무료 라운드에 참여한다. 이 이벤트는 9일 개막하는 제32회 GS칼텍스 매경오픈부터 시작한다.

 프로암 대회에서도 좀 더 서비스를 강화한다. 선수들은 동반 플레이를 펼치며 원 포인트 레슨을 해주고 경기 후에는 레슨 내용을 담은 감사의 카드도 전달한다. 또 라운드마다 2명의 선수를 지정해 갤러리 100명에게 선착순 팬사인회를 상시적으로 연다. 선수들은 ‘다시 뛰는 KPGA’와 ‘Dynamic Korean Tour’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새긴 배지를 착용하기로 했다. 황성하 회장은 “실력이 좋은 게 프로가 아니라 팬들을 불러모으는 게 프로”라고 말했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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