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오바마 평양을 보는 시선, 워싱턴서 조율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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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을 맞는 미국이 속 깊은 고민을 토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첫 정상회담을 한다. 둘 간의 상견례를 앞두고 미 의회조사국(CRS)은 39쪽짜리 ‘한·미관계 보고서’를 펴냈다. 마크 매닌 아시아문제 전문가 등 5명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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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박 대통령의 ‘궁합’을 걱정하는 내용을 군데군데 담았다. 대표적인 게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과 정책이다. 보고서는 “박 대통령이 예고한 정책의 변화는 두 나라 간에 치열한 논의를 초래할 수 있다”며 “대북한 정책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삼는 반면 박근혜 정부는 남북한 관계에 더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 정책과 관련해선 이론가(ideologue)라기보다는 실용주의자(pragmatist)로 알려져 있다”고 규정한 대목도 있다. 2011년 9월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서울-평양 간 신뢰 구축’이라는 제목으로 쓴 기고문의 예까지 들었다. 인수위 시절 남북한 신뢰 구축을 위해 남북 대화 재개와 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를 밝혔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김정은과의 만남을 추진할 수 있다고 한 내용도 조목조목 분석했다.

 보고서는 “박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단호한 대응과 화해정책을 병행할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며 “박근혜정부가 단호함과 유연함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지 지금으로선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정부가 남북관계 개선 못지않게 북한의 인권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도 불분명하다”고 했다.

 오바마-이명박 조합과 비교해가며 새로운 한·미관계를 걱정하는 주장도 담았다. 이 전 대통령 시절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관계 개선은 절대 없다’는 식의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오바마 행정부와 보조를 맞춘 데 반해 박 대통령의 북한 정책은 접근법이 다르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2009년 후반 미국의 한 고위 당국자는 ‘한·미 양국이 북한 정책에서 같은 페이지에 글을 쓸 뿐 아니라 같은 문장을 쓴다’고 말했을 만큼 두 나라 관계가 가까웠다”며 “박 대통령과도 같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관심”이라고 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 움직임에도 주목했다. 박 대통령이 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냉랭했던 한·중 관계 복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과 함께 지난해 11월 15일 대선후보 시절 한·미·중 3각 전략대화 구상을 내보였다고 소개했다. 미국 입장에선 외교정책의 주안점을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두는 박근혜정부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4월 26일자로 발간된 이 보고서는 미 상·하원 의원과 보좌관, 정부 관계자들에게 배포됐다. 보고서 발간 전 이미 글린 데이비스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등 미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기자들을 만나면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이 추구하는 바가 구체적으로 뭐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했다. 케리 장관은 지난달 18일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은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지지하지만 현재 상태에서는 실현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외교관들이 즐겨 쓰는 ‘케미스트리(chemistry)’라는 용어가 있다. 두 나라 정상이 만나 인간적으로 교감하고 친근해진다는 의미다. 오바마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 간에는 서로 케미스트리가 통했다는 게 정설이다. 한·미 정상회담 준비팀에 속한 워싱턴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오바마 대통령과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오해를 불식하고 케미스트리가 통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CRS 보고서는 일일이 논평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정부 관계자들은 CRS 보고서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비판 섞인 시선을 보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 정부 주요 관계자들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며 “정부의 대북정책에 불안감을 표시한 미 의회조사국 자료는 미국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여러 의견을 종합한 참고자료 수준의 보고서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방미 중 박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기로 돼 있는 등 한·미 간에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고 있어 관계를 단단히 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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