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축구화의 부활, 이 손안에 있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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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 시장에서 국산 브랜드는 글로벌 기업에 밀려 마이너리티가 됐다. 김준형 키카 대표는 “기술과 성능으로 경쟁하겠다”고 도전장을 냈다. [강정현 기자]

여성들은 구두에 집착한다. 남자들 중엔 이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축구화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수는 물론 조기 축구회에서도 공 좀 차는 사람들은 축구화에 대한 로망이 있다. 손흥민(21·함부르크)이 2010년 12월 축구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후 자신에게 꼭 맞는 축구화를 구하기 위해 동대문을 뒤지고 다닌 것도 같은 이유다.

 현재 한국 축구화 시장은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양분하고 있다. 토종 브랜드는 고사 직전이다. 시장이 이렇게 바뀐 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전후해 외국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면서다.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키카(KIKA)가 한국 축구화 시장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최근 키카가 다시 축구화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80년대 키카의 전성기를 열었던 모델 K777의 이름을 따 K777R을 지난달 27일 출시했다. 직원 50명에 불과한 중소기업 키카가 아디다스·나이키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그 사이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김준형(41) 키카 대표를 만났다.

 키카는 김 대표의 부친인 김휘(69) 한국유소년축구연맹 회장이 81년에 만든 회사다. 그는 제화점에서 수제 축구화를 만들던 때 본격적인 대량생산체제를 도입해 한국 축구화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키카를 신었다. 최용수(42) FC 서울 감독은 “당시에는 국산 축구화를 신고 뛴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도 90년대 중반까지 키카를 신고 많은 골을 넣었다. 내겐 추억이 많은 축구화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9년 경영을 승계한 김준형 대표는 회사의 무게중심을 제조에서 유통으로 돌려야 했다. 아디다스·나이키와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 제품 유통의 한몫을 담당하며 공존을 추구해야 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K777R의 출시는 ‘최고의 축구화를 만들겠다’는 키카 창업정신의 부활이다. 그동안 절치부심하며 닦은 유통망을 기반으로 삼아 축구화 시장에서 다시 결전에 나선 것이다.

 김 대표는 대뜸 자동차 이야기부터 꺼냈다. “키카 축구화와 기아차는 공통점이 있다. 모양부터 비슷하지 않나”라며 웃었다. 그는 “기아차가 K5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K5의 전신인 로체가 인기를 끌면서 기아차 부활의 초석을 닦았다. 신제품 K777R을 로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 번의 도전에 그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김 대표는 2002년 전후로 키카가 내리막길을 걸은 이유를 내부에서 찾았다. “화장만 좀 바꿨을 뿐 획기적인 디자인 개발과 성능 향상을 등한시했다. 결국 소비자가 등을 돌렸다”고 진단한 김 대표는 2010년부터 신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싹 바꿨다. 디자인은 나이키 농구화와 아디다스 축구화를 만든 세계적인 디자이너 성호동씨에게 맡겼다. 김 대표는 “애국심으로 제품을 팔겠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국내 브랜드라는 자부심은 있다. 발볼이 넓은 한국인의 체형에 맞는 축구화를 제작하는 노하우가 있다. 여기에 새로운 기술과 디자인을 가미하면 외국 브랜드와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년에 소비되는 축구화는 약 165만 켤레다. 아디다스와 나이키가 각각 70만~75만 켤레를 공급한다. 미즈노가 10만 켤레 정도까지 점유율을 높였다. 키카는 10만 켤레 미만이다. 김 대표는 “1980~90년대처럼 키카가 국내 시장을 석권하기는 힘들겠지만 미즈노에 뺏긴 포지션을 되찾는 게 1차 목표다. 나아가 한국 시장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후 해외로 시장을 넓힐 것이다. 이미 태국·중국으로 수출을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인정받은 뒤 유럽과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는 게 최종 목표다”고 포부를 밝혔다. 97년 외환위기 때 공장 문을 닫을 뻔했던 기아차는 요즘 세계 시장을 쌩쌩 누비고 있다. 축구화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김 대표가 서두에 기아차 이야기를 꺼냈던 진짜 이유다.

글=김환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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