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읽는 동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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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두워져서야 집에 도착했다. 며칠째 일찍 퇴근을 했더니 아내는 사뭇 흥이나 있던 요즘이다. 빗장을 따고 대문을 여는 아내의 얼굴은 언제나 처럼 『또 늦었군요』하는 표정이다. 나는 싱긋 웃고 말았다. 뒤를 따르는 아내는 술 냄새를 풍기지 않는 것에 적이 안심이라도 된다는 듯이 아무 말도 없었다.
『재미나는 게 없어. 그저 다 그래.』나는 불쑥 그것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배추색 포장지로 깍듯이 싸여진 물건. 아내는 포장지를 끌러보더니 『동화집 아냐?』하고 묻는다. 실망이라도 했다는 어조다. 『응, 「안데르센」의...』나는 대답했다. 이제 겨우 7달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어머니에게 뜻밖의 일이었을 것이다. 아기는 아기고, 분명 어른이 읽으라는 동화책이었으니 말이다.
나대로는 그럴만한 이유가 딴데 있었다. 아내의 독서범위라는 것은 공식화하여 있다. 신문·여성잡지 한가지. 그것이 전부다. 잡지라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 한심한가. 마치 소비문명시대라도 닥친 듯이, 그래서 살 판이 났다는 듯이 야단스러운 편집. 퇴근시간 후에 신간 책방을 몇 군데 들러 겨우 결단을 내린 것이 동화집 한 권이었다. <안동인·서울영등포구시흥동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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