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처럼 돌아온 '전설', '쿨한 디자인' 개혁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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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치 전무는 "앞으로 렉서스는 100명이 그럭저럭 만족하는 디자인보다 한 사람이라도 열광
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도요다 아키오 사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렉서스의 개혁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이다

렉서스가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섰다. 지난 3월 도요타 그룹이 4개 사업부문 중 하나로 설립한 렉서스 인터내셔널이 신호탄이다. 렉서스 관련 사업을 총괄하게 된다. 목표는 일본 최초의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 확립이다. 렉서스의 영향력이 여전히 북미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 편중됐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변화다. 렉서스가 앞세운 브랜드 개혁의 수단은 디자인이다.

 지난 19일 저녁 미국 뉴욕의 59번 부둣가에서 ‘디자인의 중요성(Design Matters)’이란 이름의 파티가 열렸다. 디자인에 대한 렉서스의 열정을 알리기 위해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직접 행사를 주최했다. 그는 “자동차는 사용자의 오감을 일깨워야 한다. 특히 아름다운 차를 볼 때 느끼는 정서적 유대감이 아주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파티에 앞서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렉서스 인터내셔널의 후쿠이치 도쿠오(62) 전무를 단독으로 만났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의 전폭적 지지를 등에 업고 렉서스의 개혁을 주도 중인 핵심 인물이다. 그는 1974년 도요타에 입사해 유럽 디자인센터장을 지냈다.

 정년퇴직 수순을 밟던 그가 2011년 현직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700명 넘는 디자이너를 거느린 렉서스와 도요타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직접 그를 불렀다. 왜 하필 그였을까. 후쿠이치 전무는 말한다. “12~13년 전 당시 도요다 아키오 부사장이 인도네시아 현지 차종 문제로 고민 중일 때 투입돼 문제를 해결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어요.“

 그도 “다시 일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말의 고민 없이 수락했다. 연봉과 직위의 사다리 끝까지 올라봤으니 사사로운 욕심과 걱정에 시달릴 이유는 없었다. 사장이 그에게 내린 주문은 명료했다. “간결하고 ‘쿨(Cool)’하게 디자인해주세요.” 후쿠이치 전무는 “사장이 말한 ‘쿨’한 디자인은 차별성과 개성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방향을 잡았고 권한도 쥐었다. 렉서스 디자인 개혁이 시작됐다. ‘스핀들 그릴’로 콧날을 날카롭게 찢는 식이었다. 범퍼엔 아가미처럼 칼집을 저몄다. 렉서스의 새 디자인은 찬반양론의 불씨를 당겼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과거엔 부정적 의견이 들리면 잘 수렴해 반영했다. 그 결과 모두가 싫어하지 않을 디자인이 태어났다. 하지만 이젠 완전히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다는 것일까. 그는 말을 이었다. “100명이 그럭저럭 만족할 디자인 대신 한 사람이라도 열광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겠다.” 만약 신형 IS 디자인을 싫어하는 소비자를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지 다시 물었다. “좀 더 지켜봐 달라고 말할 것이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눈에 익고 나면 달라 보일 것이다.” 최근 현대·기아차의 디자인에 대한 그의 생각도 궁금했다. 그는 “우리와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굉장히 감성적이고 경쟁력 있는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후쿠이치 도쿠오 전무가 디자인한 렉서스 LF LC

 그가 주도하는 개혁은 아직 예고편에 불과하다. 그가 디자이너로 복귀해 실질적으로 관여한 차종은 신형 IS와 컨셉트카 LF-LC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신형 GS와 LS는 그가 돌아왔을 때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그는 “신형 IS의 초기 디자인은 양산형보다 훨씬 공격적이었다”고 귀띔했다. 보다 강도 높은 디자인 개혁을 암시하는 단서다. 그에게 지금까지 디자인한 차종 가운데 최고를 하나만 꼽아 달라고 했다. 그는 피카소의 예를 들었다. “누가 피카소한테 최고의 작품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로 다음 작품이라고. 나도 역시 마찬가지다(웃음).”

뉴욕=김기범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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