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서소문 포럼

구름 잡는 소리도 외교전략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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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남정호
글로벌협력담당·순회특파원

2001년 6월 북한 상선 3척이 한꺼번에 제주도 영해를 침범했다. 햇볕정책이 강조되던 때라 해군은 즉각 몰아내지 못하고 미적거렸다. 당장 여론이 악화됐다. 그러자 김대중 대통령의 분명한 지시가 떨어진다. “지혜롭게 대처하라”고. 이게 뭔 소리인가. “알아서 기라는 이야기냐”며 군은 부글부글 끓었다.

 물론 명쾌함이 늘 지고지선(至高至善)은 아니다. 담백하게 산답시고 모든 걸 톡 까보라. 빈틈을 노리던 적의 칼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른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게 국제사회다. 당연히 여긴 더하다.

 솔직했다 화를 부른 대표적 사례는 이 땅에서 일어났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은 기자클럽에서 호기롭게 선언한다. “극동 방위선은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오키나와를 거쳐 필리핀까지 이어지는 라인이다.” 소위 ‘애치슨 라인’으로 한반도는 선 밖으로 내몰린 셈이 됐다. 이게 화근이었다. 북은 남쪽을 침공해도 미국 개입은 없을 걸로 믿었다. 그래서 5개월 뒤 부담 없이 밀고 내려왔다. 미국이 “동아시아에는 굳건한 방위선이 쳐져 있다”는 식으로 에둘렀다면 참화는 없었을 거란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실책을 막기 위해 개발된 게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구체적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얼버무리는 작전이다. 그러면 이쪽에서 어떻게 나올지 몰라 상대방이 맘대로 굴 수 없다.

 미국이 대만을 보호하기 위해 펼친 계략이 바로 이거였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대만 간 싸움이 나면 어떻게 할지 밝히지 않았다. 중국이 섣불리 대만을 침략했다간 미국의 최첨단 미사일이 날아들 가능성을 항상 열어둔 거다. 냉전 시절 동유럽 공산국이 재래식 무기로 서구를 침략할 경우 핵으로 응징할지에 대해서도 미국은 입을 다물었다. 이 덕에 공산 진영의 도발이 억제됐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이 적절히 활용된 또 다른 케이스다.

 이 개념은 국내정치 등 다른 분야에서도 다양하게 이용돼 왔다. 지난해 안철수씨가 대선 출마, 단일화 등을 저울질하며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쏟아낸 것도 전략적 모호성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았다.

 명심할 건 이를 무원칙·무개념과 헷갈려선 안 된다는 점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밖으론 밝히지 않되 내부적으론 정확한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내거는 대외정책 슬로건은 ‘신뢰외교’다. 관료들을 혼돈에 밀어 넣은 ‘창조경제’ 못지않게 알쏭달쏭하다. 최근 대북 방안을 놓고 벌어진 청와대, 정홍원 총리 간 혼선도 따지고 보면 외교안보 기조의 애매함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청와대는 협박 일변도의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반면 정 총리는 단호한 대응을 주장했다. 결국 정 총리가 발을 뺐지만 어느 쪽이 신뢰외교에 부합한지 말하기 어렵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한술 더 떴다. 국회 보고에서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과학기술 외교 전개’라는 구름 잡는 방안을 내놨다. 뭘 알고 하는 소리냐는 빈축을 산 건 물론이다.

 그럼에도 정부 관계자들은 어정쩡한 외교노선을 전략적 모호성이란 이름으로 덧칠하려 한다. 외교정책은 애매한 게 좋다는 주장도 한다. 하나 미국을 보라.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이란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차세대 에너지인 셰일오일 개발로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줄자 거침없이 아시아로 다가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외교 방향을 구체화하면 얻는 게 여럿이다. 혼선이 주는 건 물론이고 실핏줄 같은 말단조직까지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알아서 척척 대응하게 된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 참에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외교의 틀이 제시되는 ‘독트린’을 마련하자고 주장한다. 다양한 이념이 존재하는 만큼 독트린이 꼭 하나만 있을 필요는 없다. 미국의 경우 해외 문제에 끼어들지 말자는 ‘고립주의’와 적극 나서야 한다는 ‘국제주의’가 양대 독트린으로 공존해 왔다. 이 두 노선이 씨줄과 날줄이 돼 균형 잡힌 대외전략을 만들어온 것이다.

 박근혜정부도 아리송한 이름의 외교정책 대신 방향성 분명한 독트린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권 교체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남는 일관성 있는 외교가 가능하다.

남정호 글로벌협력담당·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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