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경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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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KAL기 여객들은 7일부터 예약을 온통 취소 당했다. 이유는 「날씨관계」다. 푸르고 잔잔한 하늘도 날지 못하는 여객기들인가 보다. 서울∼부산 노선만 「날씨관계」에서 제외되었다.
대한항공 소속 여객기 8대중에서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것은 3대 뿐이다. 실은 날씨 탓이 아니라, 여객기들이 모두 와병중이다. 정비불량·「엔진」고장·점검·「오버·홀딩」(부속품 경신)등 병명도 다채롭다. KAL사는 행여 여객기의 「굿·윌」(공신력)이 떨어질까 겁났던지, 공연히 푸른 하늘에만 눈을 흘긴다.
전문가들의 말을 들으면 비행기는 위험한 물건이 아니다. 미국의 통계는 지난 몇 년 동안에 비행기의 안전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비행기의 위험성이 승용차의 10분의 1정도밖에 안 된다.
65년 국제정기항공의 사고통계를 보면 치명적인 대 사고는 비행시간 40만 시간 중에 한번 쯤이다. 한 회의 비행시간을 평균 2시간으로 치면 20만번 나는데 사고가 한차례 있을까하는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안심할 수 없다. 앞서 그 통계들은 「제트」시대를 표현한 것이다. 더구나 「20만분의 1」이라는 확률은 객관적인 자료일 뿐이지, 언제 어디서 누가 당할지는 정말 아무도 예언 못한다. 사고 확률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제트」시대통계의 근처도 못 간다. 비행기가 낡은 것은 별로 큰 흠이랄 수는 없다. 「오버·홀링」만 거치면 비행기의 수명은 다시 시작된다. 그러기에 비행기는 티눈 만한 부속품에도 경력서를 붙여둔다. 부속품만 새것으로 갈아넣으면 우선 위험도는 상당히 낮아진다. 우리형편에 「딜럭스」「제트」여객기만 쳐다볼 수도 없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생명존중」에 있다. 위험한 비행기의 진상마저 덮어두고, 「날씨탓」으로만 결항을 핑계 대는 것은 바로 「인간경시」가 아니고 무엇인가. 생명을 존귀히 여기는 한줌 「봉사업 정신」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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