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 위한 20조 비상금 … 기업 투자 늘려야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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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출범 50일 만에 역대 두 번째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짰다. 경제가 극도로 나빠지면서 정부가 경기부양에 나선 것으로,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신호다. 추경 규모는 17조3000억원이지만 국회 통과 필요 없이 정부가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금 2조원과 공기업 투자 1조원을 포함하면 실질 추경 규모는 20조3000억원에 달한다.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28조4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했던 2009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수퍼 추경’이다.

 효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번 추경이 경제 성장률을 다시 4~5%로 끌어올리기 위한 부양책이 아니라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는 위기 상황을 피하기 위한 비상착륙 조치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우리 경제의 성장 동기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의 역할을 동원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 경제는 안팎 어디를 둘러봐도 낙관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다. 2011년 이후 한국 경제는 전기 대비 7분기 연속 0%대 성장을 했다. 이달 25일 발표될 올 1분기 성장률도 0%대 후반이 확실시된다. 8분기 연속 0%대 성장이 예고된 셈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지난해 3, 4분기에 전기 대비 성장률이 0%대 전반이었기 때문에 1%를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체감경기의 바로미터인 부동산 시장은 2007년을 꼭짓점으로 아예 거래가 중단되다시피 했다. 박근혜정부는 수출 여건도 최악의 상황에서 출발했다. 한국 수출의 세계 3대 시장인 미국·중국·유럽연합(EU)의 형편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은 올 1분기 7.7%로 꺾였고, 미국은 다음달 연방정부 예산자동삭감(시퀘스터) 조정을 앞두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경제의 비상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1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추경을 마중물로 해 민간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번 추경으로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느냐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박 대통령이 마중물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번 추경으로 한국 경제가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며 “기업이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상장기업의 현금성 자산이 52조원에 달하는데 이중 10%만 투자해도 추경의 세출 확대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기업투자 활성화 없이는 추경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최대 20조3000억원의 추경 규모 가운데 세수보전에 쓰일 12조원을 빼고, 기금 확대 2조원 등을 제외하면 순수하게 늘어나는 세출 규모는 5조3000억원에 그친다. 이 정도로는 올해 성장률을 최대 0.5%포인트(2.3%→2.7~2.8%) 끌어올릴 수 있을 뿐이다. 3%대인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박 대통령의 희망과 달리 기업들의 투자 여건은 좋지 않다. 세계 경제 여건이 안갯속인 데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이 ‘규제 폭탄’을 준비 중이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기업 활동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대기업 투자 활성화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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