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 상투 가능성…단기 투자는 주식 노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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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호 20면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며 자산가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골드바와 현금 자산에 관심이 쏠린다. 배경 사진은 3차 핵실험이 있었던 지난 2월 12일 한 금융회사의 전광판. 이날 코스피는 소폭 하락에 그쳤고 원화 가치는 오히려 상승했다. [뉴시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의 골든듀 매장. 이달 초부터 골드바를 팔기 시작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주말엔 “금을 살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만 100통 넘게 걸려왔다. 당초 매월 6억원 정도로 예상했던 골드바 매출은 열흘 만에 10억원을 훌쩍 넘겼다. 이 회사 김지현 과장은 “준비한 물량이 이틀 만에 소진돼 예약 주문만 받고 있다”며 “북한 리스크가 커질수록 구매 문의도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 금 시장에선 하락세가 이어지는 데 한국만 유독 다른 상황이다.

한반도 긴장 속 자산 관리법은

#서울 역삼동의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 지점. 최근 60대 중반의 한 남성 고객이 20억원 상당의 국내 주식형 펀드를 환매하고 그 돈을 수시 입출금식 계좌에 넣었다. 이 고객은 “요즘 북한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일이 터지면 주가가 크게 떨어질지 모르니 현금을 보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선욱 지점장은 “보유 자산이 많은 고객일수록 단기 충격에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어 걱정이 많다”며 “주식형 펀드 대신 종합자산관리계좌(CMA) 같은 현금성 자산이나 원금 손실 위험을 헤지(hedgeㆍ위험분산)하는 펀드에 돈이 몰린다”고 말했다.

자산가들이 술렁이고 있다. 한두 해 겪은 북한 도발이 아닌데도 그렇다. 현금 자산을 보유하고 금이나 달러 같은 안전 자산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시장 전문가들은 “시장에 단기 악재가 버티고 있을 때는 당연히 안전한 쪽으로 돈을 옮기는 게 맞다”면서도 “두려움 때문에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자산가들이 꽤 된다”고 경고한다.
북한 리스크로 인한 불안감은 상대적으로 노년층 자산가 사이에서 더 크다. 전쟁을 겪어본 세대라서다. 보유 자산도 중장년층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이은정 하나은행 도곡센터 골드PB팀장은 “노년층은 ‘전쟁을 안 겪어봐서 모른다’며 현금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크다”며 “40, 50대는 오히려 출렁이는 주가를 매수 타이밍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단기 악재로 그쳤던 북한 리스크가 두 달째 이어지자 “이번엔 다른 것 아니냐”는 경각심이 커진다. 최근 외국인이 주식을 팔면서 원화가치가 떨어진 것도 이런 심리를 부채질한다. 미래에셋증권의 정유정 연구원은 “최근 몇 년 동안 북한과 관련한 사건이 일어나도 원화가치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요즘의 변화는 이례적”이라며 “시장 반응을 지켜보되 극단적인 대응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금성 자산 금ㆍ달러에 관심 쏠려
실제로 시중에선 현금성 자산이 크게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CMA 계좌 잔고는 42조3500여억원으로 3개월 사이 1조8000억원 이상 늘었다. 3월 한 달 동안 은행의 저축성 예금이 2조2510억원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김정민 우리은행 투체어스 잠실센터 PB팀장은 “몇몇 고객은 ‘급한 일이 생기면 써야 한다’며 500만~1000만원 정도의 현금을 찾아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대표적 안전 자산인 금에도 수요가 몰린다. 지난달 4일 골드바 판매를 시작한 국민은행은 이달 10일까지 1639명에게 218억원어치의 골드바를 팔았다. 이 은행 수신부 김종규 팀장은 “당초 하루 3억~4억원 수준의 매출을 기대했는데 하루 매출이 7억~8억원 수준”이라며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층의 고객이 금을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 매입 열풍은 단순히 북한 리스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관계자의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금이 세금을 내지 않고 자녀에게 증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알려지면서 금을 사 모으는 부자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국제 금값은 폭락하는데 한국에서만 유독 금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한때 온스당 1794.1달러까지 치솟던 금값은 이달 12일 1501달러까지 폭락했다. 일부 전문가도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임민영 한국투자증권 압구정PB센터 차장은 “인도와 중국의 금 수요가 줄어들어 당분간 국제 금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며 “금 거래 비용을 감안하면 투자 원금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금 판매 금액을 원가 대비 104.5~105% 정도로 책정한다. 세공 등의 비용을 감안해서다. 여기에 부가가치세가 10% 붙는다. 김종규 팀장은 “거래 비용을 감안하면 골드바는 최소 3년 이상 보유해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며 “10년 이상 장기투자나 증여를 생각하는 자산가들이 많이 구입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의 위협이 현실화할 경우 또 다른 안전 자산인 달러화에도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반도에 불안감이 더 높아질 경우 원화가치가 폭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달러 투자에 호재가 겹치고 있다는 판단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김문일 외환선물 연구원은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내에서 양적완화 종료 시기를 두고 이견이 오간다”며 “양적완화 조치가 종료될 움직임이 보이면 달러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위협 때문에 시장이 과도하게 달러에 투자했다는 상반된 의견도 나온다. 대신증권 홍석찬 연구원은 “북한 도발을 염두에 두고 달러를 사들인 투자자들이 피로감 때문에 달러를 청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미국이 쉽게 양적완화를 종료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달러 투자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형주가 낙폭 커…IT주 유망
대북 불확실성은 국내 주식시장 침체의 첫 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증권가에서 “차라리 악재가 터졌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이유다.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주가 상승에 도움이 될 거란 판단이다.

최근 2, 3년 사이 북한발 악재가 터질 때마다 시장이 단기적으로 하락한 뒤 곧바로 회복한 것도 투자자들에게 “북한의 도발은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2006년 1차 핵실험 당시 코스피는 첫날 2.41% 급락했지만 6거래일 만에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2009년 2차 핵실험 때는 장중 6.31%까지 폭락했다가 종가는 전날과 비슷한 수준으로 마감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도 3.43%나 떨어졌던 코스피지수는 사흘 만에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경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에 각종 악재가 얽혀있는데 그중 하나만 해소돼도 안도감에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 악재가 터졌을 때 낙폭이 큰 종목을 중심으로 매수하는 게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심각하게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부국증권에 따르면 10일 기준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8배. 미국(2.18배)은 물론 선진국 평균(1.7배), 일본(1.51배)ㆍ중국(1.33배)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같은 날 기준 주가순이익비율(PER)도 8.65배로 일본(20.26배)ㆍ미국(14.17배)에 훨씬 못 미친다. 조성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 정도 수준의 PER이나 PBR은 역사적인 저점으로 보인다”며 “단기 악재로 주가가 더 떨어진다면 주식을 사들여도 괜찮다”고 말했다.

눈여겨볼 주식은 외국인 투자가 많은 대형주, 특히 전망이 밝은 IT 관련 종목이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북한발 악재가 현실화하면 외국인이 투매해 대형주 중심으로 주가가 많이 빠진다”며 “하지만 자동차주나 소재 산업주는 북한 이슈 외에도 엔저 같은 악재가 많아 투자를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금의 주식시장 침체가 북한 때문만은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팀장은 “국내 주식시장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아니어도 성장률 정체나 엔저 현상 때문에 성장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고액 자산가의 상당수가 해외 주식에 자산 분배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임민영 차장도 “새 정부가 대기업 세무조사를 강화하는 등 본격적인 기업 조이기에 들어가 당분간 주가 전망이 어둡다”며 “해외 국채 투자가 좀 더 유망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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