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도발에는 반격이 약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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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준결승 1국)
○·박정환 9단  ●·구리 9단

제2보(12~22)=구리 9단은 변화를 즐기고 모험을 즐깁니다. 자신의 감각을 믿고 마음껏 상상을 펼칩니다. 환상을 지닌 기사지요. 그러면서도 이세돌 9단처럼 끝까지 나가지는 않습니다. 그의 바둑이 포석에 특별히 강한 이유입니다. 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도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은근한 ‘도발’이군요. 강수를 던져 슬쩍 점수를 얻으려고 합니다. 만약 상대가 반격해 온다면 전쟁은 피할 수 없는데요, 한번 진흙탕 속에서 뒹굴 각오가 돼 있는 것 같습니다.

 박정환 9단이 장고 끝에 12로 받아줬습니다. 검토실에 있던 박영훈 9단과 김지석 8단이 빙긋 미소를 짓는군요. 미묘한 대목이지만 그들은 ‘반격’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바로 ‘참고도1’ 백1인데요, 이 변화는 패가 필연입니다. 5로 따낸 뒤 흑의 팻감이 어디 있느냐가 초점이지요. 흑의 팻감은 ‘참고도2’ 흑1로 미는 한 수뿐입니다. 백은 물론 불청하고 2로 잇게 되고 그래서 6까지의 그림이 그려집니다(3으로 A는 귀가 다 잡혀 무리입니다).

 어떤가요. 이 그림이 실전보다 안정적이지 않나요? 하지만 박정환은 12로 참고 말았습니다. 박정환은 전투에 강하면서도 ‘이세돌’보다는 ‘이창호’ 쪽에 가깝지요. 14로 걸쳐 나쁠 게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하지만 구리는 19, 21로 백을 분리시키며 자꾸 혼전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도발이 먹혀드니까 좀 더 힘을 내는 분위기입니다. 그런 와중에 22라는 재미있는 수가 등장했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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