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마다 꽃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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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도시의 울타리는 포로 수용소를 연상시킨다.
높다란 벽돌 담, 그 위에 또 철조망과 사금파리로 단장(?)해 놓았다. 우리 집이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날카로운 느낌을 주는 철조망이 보기 싫어 등꽃을 심었다. 해마다 새순이 돋아나고 줄기가 뻗어 나가 보기 좋게 어울려 있다. 등꽃이 피는 이 봄이 되면 울타리의 등꽃은 수난을 겪어야했다.
○…담장 너머로 드리워진 줄기에 보라빛 꽃망울이 맺기 시작하면 오가는 사람들이 꺾어 간다. 그런데 그 등나무의 줄기가 질겨서 쉽게 꺾을 수가 없으니 꺾다가 그대로 두고 가 버린다. 그러노라면 꽃망울은 피어보지도 못한 채 시들어 버린다.
○…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울타리 너머 곱게 핀 꽃을 꺾어 가는 게 아니라고 느껴진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정서적인 면에서 메말라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모두 꽃을 사랑하고 포로수용소 같은 압박감을 없애기 위해서 집집마다 울타리에 맞는 장미나 찔레를 심어 환한 마음으로 울타리 옆을 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영진·대구시 중구 동인동 179의 3·29세·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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