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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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의외라는 사람도 있고, 그러려니 했다는 사람도 있다. 박 대통령은 아무튼 더 큰짐을 지게 되었다. 이번 선거는 어느 때보다도 성실한 정책들이 대결의 초점이 되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국민의 투표 태도는 상당히 정련되었다. 누가 승리했대서가 아니다. 적어도 후보를 선택하는 입장이 확고해진 것은 민주 시민의 긍지다.
『다음 외국 지도자 가운데 어떤 형의 사람이 우리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서울문리대 사회학 교수 K씨는 전국적 규모로 국민의 태도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작년 8월에 실시된 조사이니 별로 낡은 자료도 아니다. 도시와 농촌의 20·30대 청장년들은 압도적으로 고「케네디」대통령을 지목했다. 역시 40대·50대도 「케네디」를 조심스럽게 선택했다. 그리고는 「드골」·「처칠」의 순 이다. 「전진」과 「자주」를 염원한다는 뜻인가?
박 대통령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리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압도적인 우세는 국민의 압도적인 기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커다란 승리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승리한 편은 「허니문」을 즐기는 타성에 빠지기 쉽다. 승리한 자의 미덕은 전진이지, 도취도 여흥도 아니다. 그 많은 말들은 열매로 맺어져 추수되어야 하며, 편리한 망각 속에 사장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에 이길 줄 아는 비결은 바로 약속의 추수에 있다는 정치 질서가 수립되어야 한다.
압도적인 패배는 압도적인 실망이나 절망이어서도 안 된다. 어떻게 이기느냐 보다도 어떻게 지느냐는 것은 정치의 원초적인 질서이다. 야의 의미는 패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의 존재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열은 정비되고, 무기는 다시 기름칠을 해야 한다. 패배가 패가인 정치풍토는 아무래도 잘못된 것이다. 승리한 자에겐 관용이, 패배한 자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국민은 양편에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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