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단일화는 가능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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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래 전부터 논의되고 교섭이 진행되면서 결국은 깨지고 마는 것이 야당 단일화의 움직임이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민중·신한 양당 사이에 대통령 입후보의 단일화를 둘러싸고 양측 대표들끼리의 모임이 계속되던 중, 다시 실패로 돌아가고 서로 책임 전가를 일삼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 책임이 어디에 있고 원인이 어떻든 간에 안 되는 통합을 가지고 불장난을 하는 양측에 대해 국민은 꼭같이 비난을 보내왔었다.
그러던 중 지난 23일에는 갑자기 신한당의 윤보선씨가 새로운 통합제안을 들고 나와 민중당의 유진오 씨와의 사이에 교섭이 진행중이라 한다. 그 제안의 골자는, 윤·유 양씨 외에 백낙준 이범석 양씨를 모함한 4자회담에서 통합될 새 당의 대통령 후보와 당수를 선정할 것, 우선 선거에 대비할 응급기구를 만들고 대통령 선거에 국회의원 공천 및 당 운영기구를 결정할 것, 그리고 4자회담은 1월말 이내에 완결할 것 등으로 되어 있다.
정당의 수가 되도록 이면 적은 것이 소망스러운 것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무리하게 수만을 줄이는 처사는 그 자체가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합쳐질 수 없는 당들을 하나로 묶어 놓을 때 어떤 사태가 나타나는가는 국민의 당의 경우가 여실히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형식 논리에만 사로잡히지 말 것을 우선 정치인들에게 부탁하고자 한다.
정치인들의 또 하나의 그릇된 사고방식은 조직체와 사회세력을 통한 통합이 아니라 정치가 개개인을 중심으로 하는 다분히 인물 본위의 정치관을 그대로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이 양씨가 회담에 참가하도록 되어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우리의 우려를 그대로 반증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당 기구와 세력을 배경으로 하는 정치가 요망된다.
1월말로 날짜를 잡은 것 역시 이번 움직임의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일자가 임박했다는 이유를 들 수 있을지 모르나, 워낙 시간이 없으면 처음부터 시작을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더욱이 대통령 입후보의 결정이 그 후에 있을 국회의원 입후보 공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현상에 비추어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현행 선거관계법의 내용을 감안할 때 통합 운운의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제안의 진의가 어디에 있는지 부외자로서는 추측할 도리밖에 없으나 국민의 느낌은 명분과 체면을 내세우면서 속셈이 다른 통합 교섭은 국민을 우롱하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눈앞의 조그마한 당략이 나중에는 야당에 대한 더 큰 불신임을 국민으로부터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작용의 철저한 배제」를 다짐하는 이번 회담이 과거에는 그런 사례가 있었음을 암시하는바, 정치인들 스스로의 자각이 절실히 요망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길에는 한도가 있다. 양측이 진정으로 통합을 원하고 또 그 실현이 가능하다고 믿으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의 불신임을 국민으로부터 사는 일은 삼가기를 충심으로 야당에 부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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