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 '전작(全作)주의자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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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全作)주의자의 꿈/조회룡 지음, 함께읽는책, 9천원

지난해 말 민음사의 김우창 전집 중 '궁핍한 시대의 시인'을 구하려고 서점을 찾은 기자는 적이 당황했다. 절판된지 오래됐고, 어떤 서점에서도 재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책 구입을 포기한 기자와 달리'전작(全作)주의자의 꿈'의 저자는 오히려 찾는 책이 서점에 없을 때 힘이 나는 체질로 보인다. 원하는 책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에게 청계천 헌책방 순례는 삶의 리듬이다.

고서와 희귀본.절판본.초판본 등 수집 리스트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책방을 헤매는 기분은 금광 발굴자의 심정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또 자신은 어떤 책이든 열심히 읽는 '열독가'이기보다는 책에 대한 집착, 소유욕에 눈 먼 '수집가'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다.

자연히 이 책 속에는 '헌책방의 메카' 청계천은 물론 '흙서점' '책상은 책상이다'등 서울대 앞 헌책방들, 그가 '헌책방의 교보문고'라고 명명한 학여울역 부근 '책 창고'등을 전전하며 체득한 책 구하는 노하우 등 헌책 정보가 빼곡하다.

'훈민정음'(http//www.hunmin.co.kr) 등 온라인 헌책방 등에 관한 정보도 유용할 듯싶다.

그러나 저자는 수집가 이전에 만만치 않은 독서 편력을 지녔다. 책의 제1부에서 김우창의 '난해한' 심미적 이성의 세계를 깔끔하게 정리하는가 하면 이윤기.안정효.서정주.고종석 등에 관한 저자론을 차분하게 풀어놓기도 하고, 정성일.강헌.최보은 등 대중문화 평론가들의 평점도 매긴다. 놀라운 점은 그가 디지털 세대 혹은 신세대로 분류할 만한 30대 초반이라는 점이다.

1970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춘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80년대 후반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저자는 지극히 평균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학사에서 더 뻗어나가지 못한 '가방끈'도 평균적이다. 386세대의 막내뻘인 저자는 졸업 후 한 중견기업에 취직, 썩 내키지 않는 일을 하며 6년을 버틴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저자를 조금 특별한 오늘로 이끈 것은 대학시절 전공인 경제학과는 조금 동떨어진 인문학적 관심이다. 하나의 방향, 사상으로만 향하는 대학 학회, 동아리의 세미나에 저자는 만족하지 못했다.

"책 몇권 읽고 길거리에서 돌 던지며 좌파 행세하던 젊음들은 어디로 갔나"라며 혀를 차는 저자는 스스로를 C급 좌파라고 규정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사상, 90년대 들어 정제되지 않은 문화주의가 판을 치는 상황 속에서 저자에겐 나침반 같은 스승이 필요했다.

무작정 그 사람을 따라가면 미궁을 빠져나올 수 있는 유능한 스승. '스승의 모든 책을 읽자.'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 전작주의자(全作主義者)를 택했다.

한 사람의 스승을 정하고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통해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첫 스승으로 저자는 이윤기를 택했고, 그의 1호 제자가 됐다. 아마도 책 한권에 담긴 다양한 책에 관한 정보량 면에서도 이 책이 기록이 아닐까 싶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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