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영화 '나쁜 남자'가 뜨는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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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깡패 새끼가 무슨 사랑이야." 주인공 조재현의 영화 속 대사는 이 한마디뿐.

하지만 그 흡인력은 대단했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나쁜 남자'가 개봉한지 6일만에 전국 관객 20만명(서울 8만여명) 을 돌파했다.


이는 김감독의 전작 여섯편이 끌어모은 관객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록이다.'나쁜 남자'는 7억원을 들인 저예산 영화다. 수십억원을 들인 '조폭영화'가 아니면 조기 종영의 쓴 맛을 맛봐야 했던 최근 극장가를 떠올릴 때 이례적인 현상이다.

◇ '조재현 효과'=조재현을 기용한 것이 흥행의 일등공신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는 듯하다.지난 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피아노'의 건달 출신 억관 역으로 '개성있는 연기파 조연'에서 일약 '안방극장의 스타'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천천히 손님을 끄는 것이 일반적이다.

허나 개봉 첫 주말 기록(전국 관객 13만명) 을 보면 조재현이 출연한다는 사실이 '김기덕 영화'라는 '진입장벽'을 많은 부분 허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렇지만 기실 조재현과 김감독은 1996년 '악어'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다섯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온 알아주는 단짝이다) .

조재현은 '피아노'에서 모은 기대를 조그만치도 배신하지 않는 물오른 연기를 보여준다.한눈에 반한 여자를 사창가에 팔아먹는 포주.

그 포주를 증오하다 어느 새 사랑에 빠지는 여자. 그러면서도 여전히 포주 노릇을 멈추지 않는, 뼛속까지 나쁜 남자.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불쌍한 남자'라는 공감을 이끌어내 일견 황당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작품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벌써 조재현이 향후 충무로에서 제일 잘 팔리는 배우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이 나오는 참이다.


◇ '김기덕式'이 먹힌다?=김감독의 영화는 이제껏 평단에서는 논란의 대상이었고 관객에게는 낯설고 불편한 무엇이었다. '엽기'라는 말에서 뺄 것도 보탤 것도 없을 만큼의 폭력성, 그리고 가학과 피학이 교차하는 인물들의 비정상적 행동은 '나쁜 남자'에서도 여전하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일곱 편을 통해 그가 '김기덕 영화는 이렇다'는 인식을 줄기차게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영화평론가 조희문(상명대 교수) 씨는 "잔혹하고 엽기적인 내용은 여전하지만 연출력을 좀더 세련되게 다듬었고, 누구보다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감독이라는 점이 일반 관객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같다"며 "흥행 호조는 엇비슷한 '조폭영화'의 틈새 시장을 개척한 덕"이라고 평했다.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 등 3년 연속으로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사실도 호기심을 부추켰다.

◇ 인터넷 찬.반 논쟁='나쁜 남자'홈페이지(http://www.badguy.co.kr)에는 주말 동안에 5백여개의 글이 몰려 일반의 뜨거운 관심을 짐작케 했다. 이 곳에서는 '한기가 나쁜 놈이다''그렇지 않다' 등 찬.반론이 주를 이뤘다.

제작사인 LJ필름은 네티즌 1천여명을 대상으로 모의재판을 벌였는데 이중 32%가 '밑바닥 인생에서 처음 느낀 사랑 때문에 혼란에 빠진 한기를 이해한다'며 무죄라고 답하기도 했다.

교도소로 한기를 면회온 여주인공 선화(서원) 가 "이 나쁜 놈, 지금 죽으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야"라고 울부짖는 장면 등 네티즌이 꼽는 '명장면'도 홍보에 큰 몫을 하고 있다.

◇ 홍보 전략 주효,배급도 해결=창녀의 벗은 뒷모습을 내세워 관음 본능을 자극하는, 다분히 선정적인 포스터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부산영화제 때 여성 관객들이 포스터를 뜯어버리기도 했을 정도로 김감독 작품의 지나친 남성 중심적 시각을 웅변하는 느낌도 준다.

'나쁜 남자'의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개봉 전 꽤 고심을 했다는 후문이다. 내부에선 다음달 열리는 베를린 영화제의 결과를 보고 개봉하자는 의견이 우세했었지만 결국 서울 시내 주요 극장에서 72개의 스크린을 내줬다.

CJ는 현재 스크린 수를 더 늘리겠다는 입장이어서 LJ필름 측은 최소한 50만명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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