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승부사의 업(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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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3보(25∼39)=판팅위 3단이 응씨배에서 우승하며 황금빛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승리는 좋은 것이지요. 승부세계는 기복과 부침이 필연이기에 판팅위 역시 언젠가 쓰라린 침몰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승리는 좋은 것입니다. 특히 17세 나이로 아직 소년 티를 벗지 못한 판팅위에겐 이번 승리가 커다란 자신감과 도약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패배한 박정환 9단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약관 20세의 박정환은 최근 2, 3년 동안 이창호 9단 등 정상급들을 두루 격파하며 한국의 간판이 됐는데 그런 천재가 이번에 바둑돌을 손에 쥔 이래 가장 쓰라린 패배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상대가 어린 후배라는 점이 더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경험으로 보건대 그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처를 이겨내는 것은 승부사의 업(業)이지요. 박정환이 진정한 강자로 거듭날 수 있는 시험이 시작된 것입니다.

 바둑판으로 돌아갑니다. 백은 좌변을 취해 만족한 모습이고 흑도 29로 뛰는 자세가 흑▲들과 잘 어울려 만족하고 있군요. 흑은 또 선수를 잡아 ‘보류된 요소’인 31을 차지했습니다. 이 점도 최철한 9단의 마음에 들었을 것입니다. 32에서 판팅위의 침착성을 다시 보게 됩니다. 32로 두면 39까지 우하 일대에 방대한 흑의 세력이 형성되는 것은 필연이지요. 그걸 완화시키고자 ‘참고도’처럼 변화할 수도 있습니다만 판팅위는 거부했습니다. 세력이 두렵지 않다는 얘기지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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