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취업률 30대 문턱서 우울한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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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주부 서연경(38·서울 염창동)씨는 지난달 한 건설회사에 취업했다. 첫 아이를 낳으면서 일을 그만둔 지 5년 만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한 달에 120만원을 받는다. 전에 IT 업체에서 일할 때에 비하면 월급이 절반으로 줄었다. 김씨는 “그나마 정규직이라는 데 만족한다”며 “이조차 구하지 못해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엄마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네 살짜리 아이의 엄마인 김모(31·경기도 안양시 평촌동)씨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다 3년 전 사직서를 냈다. 그는 지금 동네 학원에서 수학 보조강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 8000원에 4대 보험에는 가입조차 안 돼 있다.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다시 진짜 ‘직장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는 접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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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은 여성근로자의 지위 향상을 기념하는 ‘세계 여성의 날’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장 여성으로 살아가는 건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다. 2011년 기준 한국 여성고용률(15~64세 중 취업자의 비율)은 53.1%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 평균(56.7%)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대졸 여성들만 따지면 60.1%로 회원국 중 꼴찌(33위)다. 미국(76.2%)은 물론 일본(66.7%)과도 격차가 있다. 김태홍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은 “많은 한국 여성이 출산·육아로 인해 일자리를 떠나는 데다 한 번 떠난 뒤에는 쉽게 돌아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다수 여성은 ‘마(魔)의 30대’ 문턱에서 좌절하고 있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취업과 실업에 분류된 사람의 비율)은 62.9%로 남성(62.6%)을 처음으로 앞섰다. 하지만 30대로 들어서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6%로 급락한다. 30대 남성(93.3%)보다 37.3%포인트나 낮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30대에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고임금보다는 저임금의 ‘나쁜 일자리’를 가진 여성이 집중적으로 일자리에서 밀려난다”고 설명했다.

40대에 다시 찾은 일자리는 ‘그때 그 일자리’보다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부 이선진(43)씨도 그런 경우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새로 찾은 일자리는 동네 대형마트의 계산원이었다. 이씨는 “전문대를 졸업해 10여 년 전까지 은행에서 근무했지만 지금은 전산 등의 기술이 부족해 언감생심 같은 일자리를 꿈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2009년부터 정부는 다시 일자리를 찾는 여성을 돕기 위해 ‘여성새로일하기센터’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국에 70개 남짓하던 센터는 지난해 112개로 늘어났다. 센터 한 곳당 한 해 1100명 정도가 일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다양한 학력과 배경을 가진 여성이 도움을 받기에는 지원 인력과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현재는 대부분 생계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여성을 지원해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고학력 여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전문화된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은희 여성가족부 경력단절여성지원과 과장은 “올해 예산이 지난해보다 60억원가량 늘어난 만큼 대상별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여성이 일과 가정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파트타임은 곧 열악한 일자리, 반쪽 일자리를 의미한다”며 “여성이 근로자의 지위를 충분히 보장받으면서 일할 수 있는 파트타임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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