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무제한으로 매입해 엔화 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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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 내정자가 무제한 양적 완화(QE)를 언급한 4일 도쿄증시 닛케이 225지수가 0.4% 올랐다. 사진은 주가 전광판에 비친 도쿄 시민들의 모습. [도쿄 로이터=뉴시스]

일본의 무제한 양적 완화(QE)가 예정보다 빨리 실시될 전망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엔저 공세가 펼쳐질 조짐이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BOJ) 총재 내정자는 4일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지금까지 BOJ가 실시한 자산 매입(양적 완화)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무제한 자산 매입을 빨리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BOJ는 101조 엔(약 1300조원) 범위 안에서 일본 국채 등을 매입해 왔다. 이에 비해 구로다가 표방한 무제한 QE는 BOJ가 물가 상승 2% 목표를 달성될 때까지 돈을 계속 찍어 국채 등을 사들이는 정책이다. 애초 BOJ는 내년 1월 이후부터 무제한 QE를 실시할 예정이었다.

 엔화가치는 지난해 10월 이후 20% 정도 떨어졌다. 무제한 QE가 시작되면 엔화가치 하락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라질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통신은 노무라와 다이와증권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구로다가 19일 총재로 취임한 이후 첫 번째 금융통화정책회의에서 무제한 QE의 조기실시 일정을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구로다가 주재하는 첫 통화정책회의는 4월 3~4일에 열릴 예정이다. 이 예측대로라면 무제한 QE가 8개월 정도 앞당겨 실시되는 셈이다.

 구로다는 한국 등 국제사회 반발을 의식한 듯 “엔화가치 하락을 노리고 정책을 쓰지는 않겠다”며 “통화가치는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제한 QE를 실시하면 일본 엔화가치는 하락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구로다는 지금보다 만기가 긴 자산을 사들일 뜻도 내비쳤다. 그는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방안도 고려하겠다”며 “위험자산도 매입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BOJ는 3년 만기 국채를 주로 사들이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BOJ는 5~10년 만기 국채도 매입 대상이 된다. 게다가 비우량회사채 등도 떠안을 수 있다. 그만큼 일본 정부나 은행 등이 장기 자금을 확보할 수 있어 기업 설비투자 자금을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다.

 이날 구로다 선언은 최근 20여 년 사이 BOJ 총재 발언 중 가장 직설적이다. 그는 일본 경제정책 담당자들 가운데 비주류다. 그만큼 기존 정책 실패에서 자유로운 그는 이날 청문회에서 “BOJ는 디플레이션 해결에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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