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버스 주차장 된 서울 도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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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쇼핑 중인 외국인 관광객을 기다리는 버스들이 27일 서울 명동 주변 차로에 주정차해 있다. 이곳은 택시와 관광버스들로 거의 매일 혼잡을 빚고 있다. [강정현 기자]

27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건너편 도로. 명동 입구에 대만 관광객을 내려준 대형 버스 2대가 정차하고 있다. 관광버스가 버스전용차로를 막는 바람에 시내버스들이 차선을 바꾸느라 정체가 빚어졌다. 교통 경찰관이 다가가 “정차하면 안 되는 것 아시죠?”라고 말하고 나서야 관광버스 기사가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기사 이모(55)씨는 “명동은 외국인 단체 관광객이 반드시 들르는 코스인데 세 시간가량 구경하고 다시 버스를 탄다”며 “도심에서 멀리 나가면 차가 막혀 시간에 맞추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세운다”고 말했다. 이씨는 “근처를 돌아다니다 세울 만한 곳이 나타나면 임시로 주차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두 대의 관광버스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10분이 지나지 않아 외국인 관광객을 태운 또 다른 버스가 멈춰 섰다. 인근 노점상 김모(50)씨는 “날이 따뜻해지면 관광버스가 훨씬 많아지는데 마치 택시가 승강장에 줄지어 있는 모습 같다”며 “단속 요원이 오면 차를 뺐다가 다시 주차하기를 반복한다”고 전했다. 한 택시기사는 “성수기인 봄·가을에는 명동 입구뿐 아니라 롯데백화점 영프라자 쪽, 경복궁 근처, 남산순환도로 등에도 관광버스 천지여서 교통이 막히기 일쑤”라고 말했다.

 한 해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1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서울 도심에 관광버스가 밀려들고 있다. 그러나 대형 차량을 주차할 곳이 턱없이 부족해 도심 곳곳이 관광버스 불법 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남산·남대문시장·광화문 등에 관광버스만 주차할 수 있는 구역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구역에 일반 승용차를 주차해도 사실상 단속하기 어려워 추가 대책이 필요할 전망이다.

 서울시는 관광지 주변 버스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관광버스 주차구획’을 도로에 설치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한다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현재 관광버스가 도심에서 시간제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은 441면. 경복궁이나 롯데백화점 주차장 등 관광지 내부에 주차 공간이 있는 경우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도로변에 요일·시간별로 주차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도로변 주차 허용 구간은 승용차가 주차해도 단속할 수 없다. 시는 경찰청과 협의해 남산공원 주변 소파로와 소월로, 남대문시장 주변 도로, 광화문 새문안로2길 등 6곳에 주차 공간 79면을 확보한 뒤 ‘관광버스 전용 주차구역’ 표지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신만철 시 주차계획팀장은 “3~5월, 9~10월 관광객이 몰리는 이 시기에는 광화문 일대에 관광버스가 2열 주차를 하기도 해 교통에 지장을 준다”며 “용역을 해보니 하루 500대 정도가 도심에 진입하는 것으로 나와 관광버스 주차구역을 지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광버스 전용 주차구역 역시 승용차가 이용한다고 과태료를 물릴 근거가 없다.

 15년째 관광버스를 모는 김경복(65)씨는 “외국인 관광객은 스케줄이 빡빡하기 때문에 제때 버스를 대주지 않으면 차질이 생긴다”며 “불법 주차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댈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신 팀장은 “관광버스 운전자에게 인근 주차 공간을 적극 안내하고, 관광 가이드들이 시간 차를 둬 도심으로 진입하도록 하는 방안도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김성탁·조한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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