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코리아] 1. 말이 안 통해요

중앙일보

입력

외국인들에게 숙박업소,특히 대형 호텔이 아닌 장급 모텔은 언어의 문턱이 높기만 하다. 대부분 간단한 영어 조차 통하지 않아 "쾌적한 휴식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는 게 현장 점검 외국인들의 말이다. 작은 상점은 그렇다치고 큰 백화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중앙일보 동행취재에 나선 5명의 외국인들은 한결같이 "실제로 경험해보니 언어소통의 문제로 행동에 큰 제약을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1."노 잉글리시-" 답답한 월드인

알리카 파슨스(미국.21)는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지난해 12월 22일 숙박 문의를 위해 광주의 A여관에 전화를 걸었다.

A여관은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월드컵 관광객 숙박시설로 지정한 전국 1만5천여개 '월드인(World inn)' 중 하나.

그러나 "숙박료가 얼마냐,예약은 가능하느냐"는 파슨스의 영어 질문에 전화를 받은 사람은 "노 잉글리시"라고 답하곤 끊어 버렸다.

파슨스는 "이렇게 기본적인 말도 안통하는데 불편한 점이나 주문사항 같은 것들이 소통이 되겠느냐"며 "그런 곳이 어떻게 월드인으로 지정됐는지 궁금하다"고 의아해 했다.

같은 날 저녁 역시 월드인에 지정된 서울 종로구 황학동의 K여관을 찾은 카스티요.

"방 안에 비디오는 있느냐""룸서비스는 가능하냐"는 영어 질문을 주인은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룸""비디오""룸 서비스"라는 단어만 큰소리로 반복하자 주인은 "오케이, 오케이"를 연발하며 카스티요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안내받아 올라간 방에는 비디오도 없고 룸서비스도 안됐다.

카스티요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2. 깔보는 듯한 눈길에 당혹

상암동 경기장행 버스를 탄 파오.

'월드컵'이라는 말을 알아들은 버스기사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큰 소리로 "내려, 내리라니까"라고 외치며 그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파오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한국말을 모른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 보는 데서 면박을 주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며 "나를 중국인 불법 체류자 정도로 취급하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일본인 세키구치 아유미(21.여)는 상암동 경기장에서 지하철로 고속터미널을 찾아갔다. 세키구치는 "지하철 환승역에서 일본말로 길을 묻고 있는데 남자 고교생 서너명이 깔보는 듯한 눈길로 계속 쳐다보며 쑥덕거렸다"며 "일본인이라고 험담하는 것 같아 불쾌하고 불안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교환학생으로 넉달간 한국생활을 한 세키구치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지만 한국에는 아직까지 일본인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평소에도 강하게 받고 있다"고 했다.

#3."손가락질 기분 상해요"

과자 선물세트를 사기 위해 삼성동 코엑스 몰을 찾은 파슨스.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문의했으나 안내책자만 건네줄 뿐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코엑스 몰 지하도를 통해 부근의 대형 백화점에 갔으나 백화점 안내센터에서는 "아래로 내려가라"는 손가락질만 했다. 지하로 내려가 백화점 직원에게 "과자 선물세트를 사고 싶다"고 영어로 말하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직원은 무안한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파슨스는 이날 1층과 지하 1층을 세번 오르내린 끝에 식품매장에 갈 수 있었다.

그는 "외국어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장소라도 있었으면 한 시간을 헤매지는 않았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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