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경제 수장 자리 놓고 세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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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인천은 항만물류산업이 지역경제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항구도시다. 그런 인천이 요즘 항만물류 경제의 수장 자리를 놓고 시끌시끌하다.

 인천항의 수출입 물동량을 처리하는 하역·운송업체들로 구성된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장이 그 자리다. 이 협회의 장은 인천항 항만운영위원을 겸하는 등 인천 항만물류산업의 좌장 역할을 한다.

 이달 말로 3년 임기가 끝나는 현 이승민(㈜선광 사장) 회장의 뒤를 누가 맡느냐를 놓고 회원사들 간에 팽팽한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지금까지처럼 추대 형식으로 가자”는 데 반해 다른 편에서는 “선거로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1991년 설립된 인천항만물류협회의 수장은 그동안 지역기업인 ㈜선광과 ㈜영진공사에서 번갈아 가며 맡아 왔다. 선거가 아닌 추대 형식으로 지역기업들이 맡아 온 것이다.

 20년 넘게 이어져 온 이 같은 관행이 올해 들어 처음으로 반발에 부딪혔다. 한진·대한통운·동방·세방·동부 등 전국 단위의 대형 업체들을 중심으로 ‘이제는 바꿔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추대론에 급제동이 걸린 것이다. 현재 인천항만물류협회의 19개 회원사 중 전국 단위 기업은 위의 5개 업체뿐이지만 인천항 물동량의 50%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여기에 중소 규모 지역기업들도 상당수 동참해 본격적인 세 대결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 업체는 이미 권오현 한진 인천지사장을 단일 후보로 내세우고 “각 회원사의 의사를 물어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며 선거전에 대비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추대를 주장하는 측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승민 회장이 지난달 말 김승회 영진공사 사장 등 4명을 차기 회장 추대위원으로 지명하면서 추대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이들 추대파에서는 현재 지역기업인 우련통운의 배준영 부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밀고 있다. 추대위원회는 27일 다시 회합을 하고 차기 회장 추대 문제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추대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김승회 영진공사 사장은 “꼭 특정인을 추대한다기보다는 업계의 여러 의견을 하나로 결집하자는 것”이라며 “인천의 터줏기업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과 바꿔 보자는 의견들을 균형 있게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 선출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꼭 지역기업만 회장을 맡아야 하느냐”는 논리다. 지역기업에 국한됐기 때문에 부산 등 다른 곳에 비해 인천항의 발전이 뒤처져 왔다는 것이다. 지역 유력기업 위주의 협회 운영이 전체 회원사들의 권익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구도로 흘러왔다는 주장이다. 특히 추대 측에서 내세운 후보에 대해서는 “항만물류 쪽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지 않으냐”며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추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지금까지처럼 모양새 좋게 추대해야 업계 단합도 이끌어 낼 수 있다”며 과열 선거전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전국 단위의 대형 업체에서 회장을 맡으려는 데 대해서는 “본사도 아니고 지역 지사장이나 지점장이 협회를 이끌어 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20여 년 이상 유지돼 온 인천 터줏기업 회장 체제에 대한 반란이 어떻게 마무리될지에 항구도시 인천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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