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없는 실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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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떻게 어떻게해서 실업교육으로 조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하겠다는 구호가 있었지만, 중농정책과 마찬가지로, 그실이 점점 희미해가는 인상이 짙다.
대학진학자들은 자신의 적성이나 장래에대한 전망은 제쳐놓고 들어가기힘드는 학교나 학과에몰려서 혈투를 벌이는 습성이있다. 꼭해보고싶은 것은 고고학인데, 문리대에서 제일 「커트·라인」이 높은 학과가 정외과니까 단연 정외과로 정했다는 식. 그정도의 전환은 좋지만, 가령 물리학을 공부해서 대성했으면 하지만, 나라의 수재들은 문리대를 버리고 모두 공대에 몰리고, 공대중에서도 화공과가 들어가기 극난하니까 공대화공과를 지원해야 수재의 체통이 선다는 식의 심리가 안타깝다.
이번에 내각기획조정관실에서 조사한 결과로 실업·기술계 대학엔 천하의 수재들이 모여서 대성황을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수정원이 20여「퍼센트」나 모자라고 정원초과도 많고 해서 교육내용이 변변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 반면 각종 실업·기술 전문학교는 시설은 좋지만 학생정원이 미달이라는 기현상. 실업고등학교에 가면 학생뿐 아니라, 교사의 부족율마저 22.2%라는 고율을 나타내고있다는 것이다. 시설이 좋고, 정부에서 실업교육의 필요를 소리높여 강조하기만 해선 그방면에 수재들을 모을 수 없고, 교육의 실도 거둘수 없다는 사실의 증좌이다.
그러나, 앞으로 그 수요가 점점 늘어날 기술자양성을위한 실업교육을 실없는 것으로 만드는 원인은, 진학자들의 비뚤어진 심리에 있지않고, 실업교육을 강조하는 정책과 역행하는 제도상의 모순에 있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그것은 실업계 고등학교졸업자에게 대학에가는 길을 터놓은 것. 터놓았을뿐 아니라, 동계진학의 경우에는 인문 고교출신이 누리지못하는 특권마저 부여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실업학교는 인문학교와 다름없는 대학입시준비교가 되어버리고, 좋은 시설은 파리를 날릴 수밖에 없다. 농고에서 대학불문과로, 상고에서 수학과로 웅비하는 것은 장하긴 하지만, 그것이 적어도 대학과 실업교육을 살리는 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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