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연상‘일진회’표현 신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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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지영환

“학생들간 소통을 가로막는 벽 때문에 학교폭력이 일어납니다. 이 벽에 가로막혀 우정이 아닌 악감정만 서로 쌓여가는 거죠. 교실 안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부터 허물어야 학교폭력을 뿌리뽑을 수 있어요.”

 경찰청 대변인실 온라인소통 담당 지영환(46) 경위는 십수년간 학교폭력(학폭) 문제에 매달려 온 ‘학폭 전문가’다. 그는 지난 5일 학폭 문제를 이론적으로 고찰하고 대응 매뉴얼을 제안한 국내 최초의 학교폭력 학술서 『학교폭력학』(그린)을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학폭은 교사·학생·학부모의 잘못된 습관과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학폭의 근본 원인을 학술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낙인이론 등 다양한 이론적 틀을 적용했다. 특히 ‘학교폭력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개념을 제안했다.

지 경위는 경희대와 성균관대에서 각각 법학박사와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이기도 하다. “학폭 문제가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데도 이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책이 없었어요. 우리 사회가 학교폭력 문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학폭을 하나의 학문으로 접근한 책을 쓰게 됐습니다.”

 지 경위가 학폭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게된 건 1997년 무렵이다. 당시 경찰대 경찰수사연수원에서 근무한 그는 서울 휘경공업고등학교 등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특강을 진행했다.

 “학교 현장에서 확인한 학폭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어요. 학폭은 단순히 소탕해야 할 범죄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교육의 근간과 나라의 법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는 엄중한 문제입니다.”

 지 경위는 “폭력 학생들을 일컫는 ‘일진회’라는 표현을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진회’라는 말 자체가 학생들을 하나의 폭력 조직으로 묶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징벌보다는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며 “단순 폭력은 계도하고 보복폭행에 대해선 엄벌해 법질서의 엄중함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폭은 가정과 학교·경찰 등이 공동으로 노력해야 비로소 풀리는 문제입니다. 폭력 학생을 죄인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올바른 인성 교육이 필요한 학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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