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제업무지구 부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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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역 주변에 초고층 복합단지를 짓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자금난 돌파구를 찾지 못해 파산 위기를 맞았다. 사업지인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의 공사가 지난해 9월부터 6개월째 중단돼 있다. [중앙포토]

정부가 2007년 흉물로 방치돼 있던 용산 철도정비창 부지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용산은 장밋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이곳 57만여㎡ 부지에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 등이 들어서면 이곳은 서울은 물론 동아시아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됐다.

 사업지 인근 땅값·집값은 물론 용산 전역 부동산 시장이 급등세를 보였다. 부동산 경기가 좋던 때라 사업도 금방 될 것 같았다.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장밋빛 꿈 위로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외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삐걱댔다. 사업에 필요한 돈(약 31조원)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서다. 당장 땅값(8조원)을 치르기도 어려운 상황에 몰리면서 첫 삽을 뜨기도 전인 2009년 29개 민간 출자사와 토지주인 코레일 간 마찰이 시작됐다.

 이후 지금까지 5년여간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는 ‘사업비 마련 방식’을 두고 평행선만 달려왔다. 급한 돈은 은행에서 땅값을 담보로 빌려다 쓰는 식이었다. 근본적인 사업비 마련 방안도 없이 은행빚만 늘려오다 막판에 몰린 것이다.

 사업비 마련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이 사업의 수익성 때문이다.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나빠져 이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당초 예상보다 준 것이다. 사업 초기 빌딩 구매 의사를 밝혔던 글로벌 기업도 금융위기로 하나 둘 발을 뺐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빌딩·주택 매각 가격이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데다 매각 가능성까지 줄면서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결과에 대한 위험부담이 커지면서 출자사 간 의견은 점점 벌어졌고 다툼은 더욱 격렬해졌다.

 이 과정에서 2010년 8월 17개 건설 출자사의 대표 회사인 삼성물산이 사업 실무에서 손을 뗐다. 삼성물산은 이 사업의 개발 주체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이하 드림허브)의 자산관리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주) 대주주로 사업을 주도해왔다. 드림허브는 삼성물산이 건설사의 지급보증을 통한 자금 조달을 방해하고 있다며 AMC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 삼성물산이 빠지면 지급보증을 통한 자금조달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지급보증에 나선 건설 출자사가 없었고 삼성물산을 대신해 새로 투자하겠다는 건설사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지지부진하던 사업은 출자사들이 사업정상화 방안에 합의하면서 정상궤도에 오르는가 싶더니 또다시 불확실한 사업성에 발목이 잡혔다.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가 이번에는 사업방식과 사업 주도권을 두고 자중지란에 빠진 것이다. 코레일은 현재 민간 출자사를 배제하고 공영·단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민간 출자사는 “코레일 측 주장대로 개발하면 사업일정이 지연되는 데다 자율성과 효율성을 해쳐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없다”며 맞서고 있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인 가운데 시간이 별로 없다. 당장 다음 달 12일 AMC는 은행이자 59억원을 내야 하는데 금고에는 9억원 정도만 남아 있다.

 돈을 마련할 방법이 거의 바닥났다. 코레일이 21일 3000억원대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을 위한 담보 제공을 거부한 데다 민간 출자사 반대로 2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도 어렵다.

 최근 드림허브가 우정사업본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겨 440억원을 받게 됐지만 우정사업본부에서 빨리 줄지 불확실하다. 드림허브를 대신해 실질적인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AMC가 부도를 맞으면 사업주체를 잃은 이 사업은 무산된다.

 이 경우 사회·경제적 후폭풍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30개 출자사가 낸 1조원대의 자본금이 사라진다. 한 건설 출자사 관계자는 “미분양 등으로 유동성 위기가 심해져 자본금을 떼이면 회사 경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코레일은 땅값을 다 못 받아 고속철도 건설 부채(4조5000억원)를 갚고 적자 기업에서 탈피할 기회를 잃게 된다. 82조원의 경제유발 효과와 40만 명이 넘는 고용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만이 문제가 아니다.

 서울 서부이촌동 주민 2200여 가구는 2007년부터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이 무산되면 보상금을 받을 길이 없는데 재산권 행사를 못해 생활자금 등으로 은행에서 빚을 낸 주민이 적지 않다. 김찬 서부이촌동 11개 구역 주민모임 총무는 “사업이 무산되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발사업 이후 급등한 용산 집값·땅값이 꺼질 것도 분명하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급등한 집값·땅값이 빠지면서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 경기를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업체를 불러다 초고층 빌딩 등의 설계를 맡겨놓아 국제적 망신도 불가피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사공(출자사)이 많은 데다 사업성 악화로 이 사업은 이미 중심을 잃었다”며 “외부의 개입 없이는 자체적으로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용산국제업무지구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일대 용산철도정비창 부지(44만2000㎡)와 서부이촌동(12만4000㎡)을 합친 56만6000㎡ 부지에 국제업무 기능을 갖춘 대규모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사업. 랜드마크 빌딩을 포함해 쇼핑몰·호텔·백화점·아파트 등 67개 빌딩을 지을 계획이다. 원추형으로 디자인된 111층 빌딩 ‘트리플원’, 우리나라 전통 처마를 본뜬 ‘부티크’ 오피스텔(88층), Y자형의 72층 6성급 호텔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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