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때 좀 던졌지…마운드 오른 이승엽·이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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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18일 WBC 대표팀의 전지훈련이 열리고 있는 대만 도류구장. 타격 훈련 마지막 조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손시헌(33·두산)은 눈을 번쩍 뜨고 마운드를 바라봤다. 배팅볼을 던지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 선수의 등번호는 36번. 이승엽(37·삼성)이었다. 이승엽은 손시헌에게 “걱정마. 잘 던져줄게”라며 싱긋 웃은 뒤 공을 뿌리기 시작했다.

 한국 야구의 정서상 선후배 관계는 엄격하다. WBC 대표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고참들이 권위적인 것은 아니다. 진갑용(39·삼성), 서재응(36·KIA) 등 고참들은 훈련 내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운다.

솔선수범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날 이승엽이 배팅볼을 던진 것이 그 예다. 이승엽은 자신의 타격 연습을 마친 뒤 손시헌이 남자 후배들을 위해 배팅볼 투수를 자청했다. 그는 “배팅볼을 던진 건 별다른 뜻은 없다. 잘 던지려고 최선을 다했는데…다행히 후배들이 잘 쳤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승엽에 이어 이대호(31·오릭스)도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특유의 입담도 빼놓지 않았다. 자신의 공을 강정호(26·넥센)가 헛스윙하자 “성의 없이 칠래!”라고 혼쭐을 내고, 홈런을 때려낸 강민호에게는 “역시 롯데의 강민호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대호는 “배팅볼을 던지고 나면 몸의 밸런스가 맞는 느낌”이라고 했다. 배팅볼 투수를 자청한 이유가 엉뚱했지만 그 속에는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다.

 타격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한목소리로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외쳤다. 둘의 배팅볼을 받아 친 김상수(23·삼성)는 “이승엽 선배님이 ‘청룡기(고교야구) 최우수 투수의 공을 받아보라’고 장난치시더라. 이대호 선배님의 공은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이승엽·이대호 두 선수가 고참으로서 팀을 잘 이끌어 가고 있다”며 “이승엽은 조용하게, 이대호는 시끌벅적하게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고 귀띔했다.

도류(대만)=유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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